영화평론가가 된다는 것은 가족에게 어떤 때는 대단히 미안한 노릇이기도 하다. 남들보다 대부분의 영화를 미리 보는 통에 주말에 남편과 변변한 영화 하나 제대로 못 보고, 영화제다 뭐다 해서 밤샘이나 출장도 비일비재다.
썰렁한 시사회장에서 바짝 군기가 든 채 영화를 보기보다 개봉 첫날 관객들 틈에서 같이 웃으면서 영화 보는 게 ‘행복’이다 싶은 걸 느낀지도 오래 됐다.
영화평론가가 돼 가장 해보고 싶었던 코너가 있었다면 씨네21의 20자평 코너였다(지금은 동아일보에서 30자평 코너를 쓴다).
단 스무자로 영화평을 요약하고 별점을 주는 제도인데, 필자가 다섯 명이니 어떤 때는 짜고 친 고스톱처럼 똑같은 별이 나란히 ‘어깨 총’일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별 넷에서 한 개까지 그야말로 천양지차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단 한번으로 급소를 찔러야 하는 20자평은 태생부터 감독과 평론가의 애증의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송능한 감독은 영화 ‘세기말’에서 ‘20자평 쓰는 사람이 20자 하나 딱딱 못 맞추냐’며 필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아마도 20자평과 연관된 가장 무서운 진실이 있다면 그건 나는 내가 쓴 20자평을 잊어버려도, 막상 20자평을 당하는 감독은 내 평을 안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 영화의 경우 20자평을 쓸 때 더욱 더 심사숙고하고 별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의 경우 분명 재능있는 감독이라는 느낌은 드는데 그 재능이 아직은 설익었다는 생각이 들면 더 독해진다. 한번은 ‘간첩 리철진’의 장진 감독에게 ‘장진 감독은 시나리오만 쓰시구랴’라며 모진 평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꿈에서 장진 감독이 다음 영화를 너무 잘 만들어서 싱글벙글하며 ‘장진 감독은 정말 연출도 캡이구려’라고 별 다섯개를 주었다. 사실 장진 감독은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다.
말난 김에 고백을 하자면 나도 인간인지라 어떤 때는 별점에 대해 엄정한 잣대를 세우기 힘들 때도 있다. 방금 본 ‘반칙왕’에는 별 넷을 주면서 2년 전에 비디오로 미리 본 ‘쉘 위 댄스’에는 별 셋 반을 주는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둘 모두는 주인공의 ‘서투른 진심’이 돋보이는 좋은 코미디이고 어딘지 참 비슷한 구석이 있는 영화인데. 결국 20자평은 평론이라기보다 조크에 가까운 것이다. 20자평이나 30자평 본질은 어디까지나 자기 입맛에 맞는 영화를 고르려는 관객들에 대한 일종의 쉽고 빠른 서비스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돌아올 20자평이 기다려지는 영화가 있다. 바로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 이 영화의 진정한 이름은 ‘오! 수작’일 것이다.
이 작품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진출해 프랑스의 유력지 르 몽드의 격찬을 받았었다. 이 밖에 처음으로 칸영화제 메인 상영관 앞에 태극기를 게양하게 해준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은 수상은 못했지만 이미 80만달러의 개런티를 받고 미국 프랑스 등지에 배급될 예정이다.
늘 남의 나라 잔치 같던 칸영화제에 우리 영화가 아시아 영화강세에 한몫을 하고 있으니, 새 천년을 맞는 우리 문화계로서는 좋은 징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 수정’이 칸에서 상을 타지 못했기 때문에 ‘오! 수정’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는 없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서편제’보다 ‘티켓’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춘향뎐’이 칸영화제 본선에 나갔기 때문에 갑자기 좋은 영화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번 칸의 진정한 승자는 무려 600만달러 어치를 수출한 충무로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아닐는지. 아무튼 칸이라는 외국 영화제의 평가와 상관없이 나는 ‘오! 수정’에 별 넷을 던질 것이다. 아마도 이번만큼은 그 누구도 ‘예술을 하려거든 홍상수처럼 하라’는 ‘오! 수정’에 대한 평에 머리를 갸우뚱거릴 사람은 없겠지.
심 영 섭(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