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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송평인/큰 종교인의 '열린 신앙'

입력 | 2000-05-25 20:36:00


'평화의 사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3월 이스라엘 등 중동 3개국을 방문했다. 팔순의 교황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주위의 부축을 받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 중동순방에 앞서 "바티칸이 교황에게 무리한 순방일정을 강요, 안락사시키려 한다"는 거친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교황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방문을 강행, 유대교와의 화해를 모색했다. 직접 유대교의 두 종파인 아쉬케나짐과 스파르딤을 대표하는 랍비 장관 2명과 만나 회담하고 유대인 박해의 상징인 홀로코스트 기념관도 방문했다.

'한국 천주교의 큰바위얼굴'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은 24일 성균관대 설립자인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선생의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기 위해 서울 수유동 4·19묘지 뒤편 북한산에 올랐다. 올해 78세인 추기경은 다소 힘에 겨운 듯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김추기경을 안내하는 심윤종(沈允宗)성균관대 총장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심산의 묘에는 조촐한 제사상 하나가 차려져 있었다. 모두 재배(再拜)를 올리는 시간, 김추기경은 당당하게 큰절을 올렸다. 추기경의 심산에 대한 '예(禮)' 표시가 '큰절'임을 확인한 심산상 관계자들은 크게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추기경을 수행한 신부들은 다소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최승룡(崔承龍)가톨릭신학대 총장은 "추기경이 재배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고 말했으며 한 신부는 "의미를 확대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서구에서는 그리스도교와 유대교간의 반목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제례문제를 둘러싸고 천주교와 유교의 갈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박해를 받았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점령지구 일부 반환을 둘러싼 유혈사태와 단군상 훼손을 둘러싼 국내 종교갈등을 지켜보며 교황과 추기경의 '열린 신앙'에 더욱 고개를 숙이게 된다.

송평인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