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을 앞두고 전국 약국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다.
7월부터 의사들은 처방전만 발행하면 그만이지만 약국은 환자들이 원하는 약품을 구비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이 약사들의 인식이다.
이에 따라 약국에서는 의약분업이라는 ‘혁명’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형 약국끼리 통폐합하는가 하면 환자와 약품관리를 체계적으로 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근처에는 새 약국이 속속 들어서 약국끼리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서울 관악구 봉천 10동에 있는 ‘그랜드 약국’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새시장 약국’이라는 간판으로 영업중이었다. 10m 간격을 두고 길 건너편과 옆에 있는 ‘세기약국’ 및 ‘연세약국’과는 경쟁관계였다.
세 약국의 주인들은 의료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안이 확정되자 머리를 맞댔다. 경쟁하다 같이 망하느니 힘을 합해서 같이 살아남자고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3개월간의 논의를 거쳐 지난해 10월 1일 ‘새시장 약국’을 ‘그랜드 약국’으로 바꿔 다시 문을 열고 나머지 두 약국은 없앴다.
결과는 대성공. 통폐합 전의 3개 약국을 합쳤을 때보다도 전체 매출이 30∼50% 가량 늘었다. 3명이 교대로 쉬어가면서 일해 몸이 덜 피곤하니 손님에게 더 친절히 대할 수 있었고 내부 인테리어도 바꾼 게 주효했다.
‘새시장 약국’을 운영했던 김상태(金相泰·59)약사는 “세 사람이 충청도와 영호남 사람이고 출신 대학도 모두 달랐지만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면 모두 약국 문을 닫아야 한다는 데 공감해 한 식구가 됐고 결국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전남 전주시의 ‘모래내-태평양 약국’, 부산 고신대 앞 ‘복음약국’, 경기 성남시 분당 차병원 앞의 ‘태평양 약국’도 약사 5∼7명이 각자 운영하던 약국을 처분하고 지분을 공동으로 출자해 새로 만든 경우이다.
대한약사회는 대형 약국일수록 많은 약품을 갖추고 재고 관리비용도 줄일 수 있어 여러 모로 유리하므로 덩치를 불리는 약국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의약분업이 약사들에게 무조건 좋은 제도는 아니다. 의약품실거래가제 도입으로 약가 마진이 투명하게 드러난데다 의사가 처방한 약이 없거가 서비스가 나쁘면 고객에게 바로 외면받기 때문.
서울 강남구 차병원과 동대문구 경희대병원 등 유명 병원 부근에는 지난해부터 새 약국이 하나둘씩 늘어났거나 들어설 예정이며 지방의 일부 사립대학은 재단측이 대형 약국을 부속병원 부근에 개설하는 방안을 검토중이어서 기존 약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경희대 앞 고황약국의 김사용약사(54)는 “인근 약국과의 서비스 경쟁에서 이기려면 소파와 휴식공간을 바꾸고, 컴퓨터 조제대 자동포장기 등을 새로 갖추고, 약사도 늘려야 하므로 투자비가 상당히 들어갈 전망”이라고 말했다.
대한약사회는 약국간 경쟁을 고객과 약국 모두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약국 관리 프로그램인 ‘팜 매니저(Pharm manager) 2000’을 무료배포하면서 지난해 5월부터 시군구 별로 컴퓨터 교육을 실시했다. 전국의 약사 1만9000여명중 3분의 2 가량이 교육을 마쳤다.
약사회는 또 약사들이 국내외 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좀 더 빨리 검색하고 약물 부작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기 위해 24일 ‘대한약학정보화재단’을 발족시켰다. 약국을 찾는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자세한 안내를 해주자는 취지에서다.
분업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약사들이 잠잠했던 것은 7월부터는 의사들의 협력 없이는 약국 경영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약사회는 이에 따라 7월부터 약국을 찾는 환자들을 병원에서 먼저 진찰받도록 하는 ‘병의원에 환자 보내기’운동을 전개한다. 대한약사회 박인춘(朴仁椿)홍보이사는 “의약분업이 환자 의사 약사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착하려면 의료계와 약계가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조금씩 양보하고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