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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지휘자' 차인홍씨 美대학서 교향악단 맡아

입력 | 2000-05-26 19:33:00


척추 장애로 의자에 앉아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영국의 명지휘자 제프리 테이트. 그 마에스트로처럼 신체의 협소한 울타리를 넘어 영성(靈性)의 세계로 오르기를 항상 소망했던 한국의 젊은 장애인 음악인이 중년의 초입, 미국 땅에서 그 꿈에 꽃을 피웠다.

4월초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라이트주립대 음대 교수로 임용된 바이올리니스트 차인홍(車寅洪·42)씨.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중증 장애인인 그는 현직 교수 7명을 포함한 80여명의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발탁돼 강의와 함께 대학내 현악 4중주단의 바이올린 연주와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게 됐다.

뒤늦게 언론사로부터 26일 축하 국제전화를 받은 차교수는 별일 아니라는 어조로 “우수한 인재가 임용 심사에 많이 몰려 내게 기회가 오리라는 기대는 하지 못했다”며 “인종과 신체라는 두 가지 핸디캡을 뛰어넘어 나를 선택해 준 대학측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소아마비로 그는 두 살때부터 두 다리를 쓸 수 없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초등학교 과정을 간신히 마쳤지만 중학교 진학은 포기해야 했다. 예민한 감수성의 소년으로부터 모든 것은 돌아앉아 있었다. 죄지은 일 없이 주변의 눈치보기를 세상은 강요했다. 마치 스스로 시들어 주저앉아 주기를 바라는 듯한 숨막히는 이 사회에서 어린 싹을 지탱해 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손에 쥔 바이올린뿐이었다. 검정고시로 어렵사리 중학과 고교 과정을 마친 차교수는 국내에서는 더 이상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음악 공부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82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상식이 일상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그곳에서 그는 아무도 ‘불편한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 86년 오하이오 주립 신시내티음대를 졸업했다.

뉴욕 시립 브루클린음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91년 귀국한 그는 대전시립교향악단 악장을 맡으며 국내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벽은 여전히 두터웠다. 실력과 의욕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국내에서는 꿈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97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마침내 99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에서 지휘 전공 박사 학위를 받기에 이르렀다.

“올 초 국내 특정 대학에서 장애인의 입학 자격을 놓고 논란이 빚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쓰렸습니다.”

차교수는 “신체의 장애는 예술에도 인생에도 장애가 아닌 것 같다”며 “진짜 장애는 ‘정상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축하 인사에 답했다.

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