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스탈린희생자 韓人27명 추모식 60여년만에 열려

입력 | 2000-05-28 19:50:00


27일 러시아 모스크바 남쪽 외곽의 부토보 숲. 30년대말 스탈린이 이끈 ‘대공포의 시대’ 당시 학살돼 이곳에 묻힌 10만여명의 넋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리고 있었다. 꽃을 손에 들고 검은색 코트를 입은 수천명의 추모객들로 부토보 숲은 검은 물결을 이뤘다.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알렉시이 총주교의 집전으로 추모식이 거행되자 억울하게 숨져간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날 이 곳에 묻힌 것으로 확인된 한인 27명의 추모식도 60여년 만에 처음으로 열렸다.

▼일제간첩 혐의씌워 처형▼

당시 소련 비밀경찰은 1000여만명을 반동으로 몰아 잔인하게 학살했다. 폴란드계 유대계 등과 함께 20여만명의 재소 한인들은 혹독한 수난을 겪었다. 스탈린은 37년 극동 거주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한인지도자 3000여명을 ‘일제 간첩’ 등의 혐의를 씌워 처형했다.

처형된 사람들은 부토보와 모스크바 남부 코무나르카, 돈 사원(寺院)에 암매장됐다. 무덤을 파는 데 동원됐던 농민들도 매장이 끝난 뒤 사살하고 근처의 농가를 불태워버리는 등 학살극은 극비리에 진행됐다.

평화스러운 부토보 숲이 지닌 끔찍한 역사는 15년간 시베리아 유형(流刑)을 당했던 소련 고위관리 출신의 미하일 민들린이 일생을 걸고 추적한 결과 고르바초프 집권 당시인 80년대말에서야 햇빛을 보게 됐다. 희생된 아버지 구철서씨의 행방을 찾던 구 스베트라나(62)와 재(在)모스크바 이형근(李衡根·60)목사는 민들린의 추적 결과 공개된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문서보관소의 자료를 바탕으로 1000여명의 한인 희생자 명단을 찾아냈다.

이 에라(67)는 2세 때 처형된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고 평생을 살아오다 이 때 발견된 KGB 관련서류에 붙은 사진을 통해 처음 확인하고 비통하게 흐느꼈다. 이씨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로 코민테른에서 활동하다 38년 처형된 이원수씨.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러시아의 ‘음유시인’으로 유명한 가수 겸 작곡가 율리 김(63).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김철산(1904∼1938)선생으로 소련 비밀경찰에 의해 처형된 뒤 코무나르카에 묻혔다. 1세 때 아버지가 체포되고 유대계 교사였던 어머니마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자 그는 누나 알리나(66)와 어린 시절을 ‘고아 아닌 고아’로 보냈다.

끌려간 지 8년 만에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아버지의 생사를 몰라 애를 태우다가 10년 세월이 흐른 뒤 날아든 아버지의 사망통지서에 충격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김씨는 80년대 소련의 전체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노래를 부르며 인권운동에 나서게 됐다.

▼1000여명 매장확인도 안돼▼

이날 부토보 숲 한 귀퉁이에는 나라를 잃고 이역만리를 떠돌다 처형된 한인 27명의 넋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추모비에는 비문 없이 한을 품고 숨져갔을 이들의 명단만 쓸쓸하게 기록돼 있다. 스탈린의 강권통치 때 처형된 한인 1000여명의 대부분은 아직도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