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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경우/외국인근로자 생활권 보장하라

입력 | 2000-05-29 19:28:00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때리지 마세요.”

95년 네팔인 산업연수생 13명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농성할 때 목에 걸었던 피켓에 적혀있던 문구다.

“노동력만 착취당하면 그나마 다행이에요. 온갖 인격적인 모욕을 비롯해 임금체불, 산업재해, 폭행…. 사회의 어두운 구석으로 몰아넣어 노예 아닌 노예로 전락시키는 비인간적인 행태가 하루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몇년간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동상담을 해온 상담자의 말이다.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문제를 다룰 인권대책기구를 만들기로 한 것은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이란 산업기술연수생제도에 따라 입국한 근로자, 연수생으로 입국해 체류기간을 넘긴 불법 체류자, 방문비자 등으로 입국해 취업한 불법 체류자들이다.

91년 시행된 산업기술연수생제도는 본래 국제기술협력 차원에서 현지 투자법인의 근로자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고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외국인력 도입제도로 운용돼왔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통해 동남아에서 들어온 연수생들은 이른바 3D업종에 집중 배치됨으로써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다. 외국인 근로자는 97년 말에는 25만명이나 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당시 실업대책의 하나로 외국인 근로자를 한국인 근로자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불법 체류자가 급증해 현재 외국인 근로자의 60%가 불법체류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기술연수생들은 다른 근로자와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신분이 연수생이라는 이유로 월급여가 30만∼40만원에 불과하다. 불법으로 취업할 경우 월 80만원의 급여를 받는다고 하니, 이는 연수생들이 직장을 이탈해 불법취업을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부득이 사용자는 연수생의 이탈을 막기 위한 각종 방법을 강구한다. 고의적인 임금체불, 여권압류, 임금 50% 예치 강요, 외출금지 등. 불법 체류자의 경우 신분이 노출되면 강제로 퇴거당하기 때문에 사용주의 요구에 반발할 수도 없다. 혹시 체불임금이나 산업재해로 행정기관에 구제를 신청하면 구제받기도 전에 강제 퇴거당하기도 한다. 그러니 모든 굴욕과 고통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침내 김포공항을 떠날 때면 돌아서서 침을 뱉고 치를 떨 것이다. 너희가 선진 문화국가냐고.

산업기술연수생 또는 불법 취업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대우를 받아도 되는가? 그들은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라는 국가적 필요에 따라 한국에 왔다. 그들이 종사해온 3D업종은 국내 근로자들에 의해 충원되기도 사실상 어렵다. 경제구조상 외국인력의 수입은 계속될 것이고, 장기 체류자는 증가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오랫동안 한국에 체류하면서 사회 문화적으로 이미 한국인이 되어 있다. 결혼하고, 자녀를 출산하고, 한국어와 풍속에도 익숙하기에 자녀들도 취학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도 국내에서 살면서 취업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법제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국적 취득도, 취업자격 획득도 그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9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연수취업제도도 최근 이 시험에 응시한 연수생이 전혀 없다는 보도를 보면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보도된 3년 연수 후 2년간 취업을 허가하는 방안도 연수취업제의 변형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취업하는 직종이 대부분 단순직종인데 3년간의 연수가 왜 필요한가. 외국인 근로자 문제에 대해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들이 한국사회에 정상적으로 편입돼 살아갈 수 있도록 노동권 거주권 등 생활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들도 함께 보듬고 가야 할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