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영화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1987년경만 하더라도 외화를 수입하겠다고 나서면 화려한 외국영화사 시사실에서 제작이 끝난 영화를 감상하며, 온갖 접대를 받으며 작품을 고르던 호시절이었다.
그것도 잠깐, 영화시장이 개방되면서 촬영이 끝나기도 전에 시나리오만 읽고 영화를 사야했고 급기야 감독과 배우의 이름 그리고 간단한 줄거리만을 듣고 영화를 사야하는 과당경쟁의 시절이 왔다.
불행히도 그동안 외화 수입업자들은 ‘손님이 왕’이라는 시장원칙을 무시하고 외국영화에 관한한 ‘파는 사람이 왕’이라는 웃지 못할 상황에서 지내왔다. 살 사람이 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접대는 물론 웃돈까지 얹어 줘야하는 시절이었다. 그 피나는 과당경쟁의 결과로 대기업들이 수백억원씩 손해를 보고 영화에서 손을 떼고 나니 그동안 이를 즐겼던 외국제작자들도 더 이상 한국을 봉으로 생각하지 않게 됐다.
한국과 동남아 전역에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외국영화제작업체들이 제작한 영화들이 제값도 못받고 팔리게 되자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아예 제작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화판권을 팔 돈으로 제작비를 충당하던 그들이 거만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시장에 나가면 전에는 ‘또 한국이냐’는 듯이 귀찮은 시선을 보내던 그들이 이젠 문을 박차고 뛰쳐나와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
이젠 제대로 ‘왕’ 자리를 되찾았나 하는 기분이었지만 이번 칸영화제에서 영화수입 경쟁이 다시 불붙기 시작하면서 불현 듯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아, 다시 그들에게 애걸복걸 매달려서 영화를 사야 하는가.
다행스러운 일은 한국영화가 국내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면서 외국에서도 점차 인정받기 시작해 한국영화를 판매하는 사람들도 외국수입업자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살 때도 왕, 팔 때도 왕이 되는 ‘왕중왕’이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김형준(한맥영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