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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존]올여름을 준비하는 한국의 공포영화들

입력 | 2000-05-30 10:58:00


"어쩌면 그 애는 악마일지 몰라".

눈물처럼 투명한 10대 소녀에게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해 내는 은 순정만화 같은 외피와 달리 공포영화다. 영화의 중심은 미조와 구호가 나누는 순수한 사랑이지만 그 그늘에는 근친살해, 파괴의 힘으로 돌변하는 초능력,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깔려 있다. 한동안 한국영화에서 잊혀졌던 '한'을 되살린 의 박기형 감독이 다른 색채의 공포로 찾아온 것이다.

은 시작에 불과하다.

몇 년 동안 드물게 공포영화를 생산해 왔던 한국영화는 올 여름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피비린내와 참혹한 사지절단의 지옥에 이끌리고 있다. 등이 그런 영화들. 얼마 전 제작에 들어간 도 비슷한 내용을 가진다.

이들은 끈적한 핏덩이를 뜻하는 '하드 고어'를 표방한 99년의 보다 더 잔혹하고 엽기적인 영화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싱싱한 젊은 육체를 난도질한다는 이 영화들에서 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인 안병기 감독의 는 대학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동아리 '어 퓨 굿 맨'에서 일어나는 살인극을 다룬다.

그들은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갔고 모두가 잊고 싶어하는 그 죽음의 기억은 다시금 근원으로 돌아 온다. 눈알이 뽑힌 채 죽은 세훈을 시작으로, 죽은 아이는 끝끝내 자신의 생명을 보상받으려 한다.

의 김인수 감독도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변으로 놀러 간 통신 동호회 회원들은 출발할 때부터 이미 죽음과 함께 한다. 채팅 도중, 그들은 '새먼필'이라는 ID를 가진 회원을 자살하게 만드는 어떤 말을 내뱉었고, 하나씩, 죽어 간다. 새먼필은 이미 죽었는데, 누가 그를 대신하는 것일까? 고립된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죽어 간다는 는 크리스털 호수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의 이야기 과도 비슷하다.

영화 촬영을 하던 영화동호회 회원들이 시나리오 대로 죽음을 맞는 와 의도하지 않은 살인에 휘말리는 역시 '청춘'과 '호러'를 결합시킨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살인이, 그것도 피바다를 이룰 정도로 신체를 훼손하는 원한에 찬 살인이 동호회 혹은 동아리 내에서 벌어진다는 점이다.

90년대 젊은이들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지만 그 안에서 소통하지는 못한다. 단절과 소외.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징후를 이 영화들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다같이 '한국의 '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내세운다. 는 각각의 회원들을 스포츠, 섹스, 영화 등의 아이콘으로 만든다.

는 통신을 매개로 아름답고 활기찬 젊은이들을 한여름의 해변이라는 눈부신 공간에 진열한다. 무서우면서 보기에도 즐거운 10대 호러 의 표피만을 한국으로 가져오려는 것이다. 의 유지태와 김규리, 의 김현정 등 젊은 스타들을 기용한 것도 마찬가지 의도로 보인다.

'엽기'를 내세우는 것도 고만고만한 전략이다. 의 제작사는 "한국 공포 영화 사상 가장 많은 피를 썼다"고 밝히지만 피범벅이 된 은 조금도 무서운 영화가 아니다. '엽기' 혹은 '잔혹'이 곧바로 공포와 연결되지는 않는 것이다.

모든 영화가 진지한 사회적 의미를 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이 외면하고 배설해 버리려는 여고의 괴담을 영화로 가져온 박기형 감독의 은 현실과의 긴장을 잃어버린 동시에 지루하게 늘어지는 이 되었다.

옛말에도 있듯이, "산사람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영화 속의 공포가 단지 환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객이 깨달을 때 공포가 가장 커지지 않을까? 여름을 준비하는 이 영화들이 언제 어떻게 덮쳐올 지 모를 공포를 전해줄 수 있을 지는 좀 더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다.

가위 공식 홈페이지 : http://www.kawee.co.kr

김현정(parady@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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