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이 떨군 고개, 축 처진 어깨….’
너무도 눈에 익은 장면이었다. 올해만큼은 달라지리라 굳게 다짐했건만 진저리나는 징크스는 또다시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30일 파리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올 시즌 두 번째 메이저 테니스대회인 프랑스오픈 남자단식 1회전. 세계랭킹 2위 피트 샘프러스(29·미국)는 3시간39분의 피를 말리는 접전 끝에 호주의 마크 필리포시스에게 2-3(6-4, 5-7, 6-7, 6-4, 6-8)으로 역전패했다. 샘프러스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현실이 너무 실망스럽다. 은퇴하기 전까지 프랑스오픈의 불운을 꼭 씻어내겠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샘프러스는 최고시속 216㎞인 필리포시스의 강서브에 23개의 에이스를 허용했고 60개의 범실을 저질렀다.
개인 통산 12개의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따낸 샘프러스. 하지만 유독 프랑스오픈에만 출전하면 우승은 고사하고 번번이 예선 탈락의 고배를 들었다. 최근 4년간에도 97년 3회전 탈락, 98년과 99년에는 2회전에서 가방을 쌌다. 첫판에서 ‘하차’한 적도 95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서브 앤 발리가 주무기인 샘프러스에게 붉은색 벽돌가루가 깔린 이 대회의 클레이코트는 불리했던 게 사실. 잔디나 하드코트에 비해 코트 표면의 반발력이 강해 장점을 제대로 살릴 수 없었다. 가뜩이나 프랑스에만 오면 주눅이 드는데다 올해에는 대진운까지 나빴고 ‘롤랑가로스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4번 시드의 예브게니 카펠니코프(러시아)는 이반 루비치(크로아티아)를 3-2로 힘겹게 꺾고 2회전에 올랐다. 여자단식에서는 마리 피에르스(프랑스)와 모니카 셀레스(미국) 등 상위랭커들이 무난히 1회전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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