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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세상읽기]'국민경찰' 여러분 힘 내세요

입력 | 2000-05-30 19:47:00


지난 일요일 자정 무렵 영등포 유흥가 한복판 J파출소. A경사가 막 붙들려온 ‘아리랑치기’ 현행범에 대한 체포서류를 꾸미느라고 분주한데 승차거부 시비로 드잡이를 벌인 택시운전사와 취객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욕설과 고함이 난무한다.

B경장이 겨우 이들을 달래놓자 이번에는 근처 S나이트의 웨이터 ‘오빠’씨가 술값을 내지 않고 버티는 ‘손님 형’을 데리고 왔다. 이런 와중에 ‘박찬호’와 ‘막내’씨 등 또 다른 웨이터들이 손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은 쪽지를 들고 와 C순경한테 미성년자 여부를 조회한다.

단란주점과 유흥주점 53곳, 여관 50곳, 노래방 32곳, 일반음식점 34곳, 비디오방 20곳을 비롯해 무려 1000여 개의 업소를 ‘거느린’ 이 파출소의 주말 북새통은 술집들이 문을 닫는 새벽 5시 이후에도 한 시간 넘게까지 파상적으로 계속된다.

▼주말이 무서운 유흥가 경관들▼

인근 사창가의 호객행위 단속에서 뒷골목 강 절도 예방, 미성년자 주류제공 단속, 오토바이 폭주족 검문에다 문을 차고 들어오는 만취 불청객 달래기까지 8명의 심야 근무조가 하는 일은 실로 잡다하기 짝이 없다.

해가 솟아오른 다음에야 업무 뒷정리와 인수인계를 끝낸 A경사는 전날 저녁 구해다 놓은 백일홍 모종을 소중하게 챙겨들고 파출소를 나선다. 초등학생 아이의 학교 준비물이라 귀가하는 길에 학교에 들러 전해주려는 것이다. 그의 ‘퇴근 소감’은 이랬다. “주말은 무서워요. 유흥가 파출소는 어디나 다 이럴 겁니다.”

애로사항을 묻자 경찰경력 10년째인 B경장의 표정이 조금은 쓸쓸해진다. “월급요? 많지는 않죠. 오르면 좋겠지만 경찰만 올려줄 수야 있겠습니까? 그래도 요샌 많이 나아졌습니다. 맞교대 근무에서 3교대로 바뀌어서 가정도 좀 챙길 수 있고요, 몰래 뒤를 캐고 미행하고 해서 우릴 다 무슨 도둑놈 취급하던 감찰제도도 지도 위주로 변했거든요.”

‘잎사귀 셋’ B경장은 네 식구의 가장이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찍힌 ‘급여지급명세서’를 보니 지난 해 급여총액은 2060만원. 기본급이 800만원 정도, 나머지는 모두 기말과 초과근무 등 각종 수당이다. IMF 경제위기로 잘려나갔던 ‘체력단련비’가 ‘가계지원비’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 금년에는 100여만원을 더 받게 되었다. 경력 28년에 대학생 자녀를 둔 ‘무궁화 하나’ 파출소장 D경위의 연봉은 30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 보는 눈에 따라 다르긴 할 테지만 ‘노고에 감사드린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액수는 분명히 아니다.

이상은 종암경찰서 뇌물사건에 대한 일선 경찰관들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잠깐 들렀다가, 하도 ‘재미있어서’ 뜻하지 않게 새벽까지 머물렀던 J파출소에서 본 것들이다.

‘미아리 텍사스 정복 작전’으로 일약 ‘국민경찰관’으로 떠올랐던 김강자서장은 26일 기자회견에서 집요하게 ‘감독책임’을 거론하는 질문공세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부임한 이후 교체한 단속부서 직원들 가운데 윤락업소에서 돈을 받은 사람이 있으면 내가 옷을 벗겠다.”

사실관계는 검찰수사를 지켜봐야 할 테지만, 설령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김서장이 ‘옷을 벗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에도 적응기간의 부작용은 있기 마련이다. 타율과 통제에서 자율과 책임으로 전환한 이무영경찰청장의 기본방침이 옳다고 하더라도 모든 경찰관이 충실하게 그 뜻을 받아들일 리는 만무한 일 아닌가.

▼"종암서 때문에 희망 접을수야"▼

김서장은 남성사회의 접대문화에 물들지 않은 여성으로서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미성년자 매매춘 문제 해결에 나선 ‘국민경찰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전지전능의 초능력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파출소를 나서면서 들은 B경장의 한 마디가 더 무겁게 다가온다. “전직할까 고민 많이 했죠. 하지만 이제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서 남기로 했습니다. 종암서 하나 때문에 희망을 접을 순 없죠.”

물론 믿어서 손해날 일은 없다. 하지만 지금 경찰에게는 그보다 훨씬 적극적인 성원이 필요한 듯하다. “김강자 서장님, 힘 내세요!”

유시민(시사평론가) denkmal@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