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강한 모더니즘 계열의 시집을 선보여온 ‘세계사 시인선’ 시리즈가 10여년만에 100권을 돌파했다. 1989년 가을 1호로 정현종의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를 낸지 10여년만이다. 100번째 ‘내 몸이 시다’는 이윤택 이승훈 최승호 김정환 김명인 김정란 유하 신현림 등 그간 참여했던 시인 78명의 대표작을 1편씩 골라 묶었다.
시집 시리즈 중에서 막내뻘인 ‘세계사 시인선’은 그간 서정시나 참여시 대신에 주로 자기 목소리가 강한 시인에게 마당을 만들어줬다. 황동규 오세영 이수익이나 신경림 고은 같은 이가 목록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당시 세계사 주관으로 이 시리즈를 기획했던 시인 최승호의 시적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 시리즈의 보이지 않는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문단의 이해관계에 어느정도 자유럽게 시인을 선정한 점. ‘시단의 재야세력’란 말을 듣는 것도 그리 무리가 아니다.
강렬한 시 세계를 가진 작가 정신의 거처였던 만큼 아픔이 없지 않았다. 91년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15번)을 낸 이연주는 우울한 시풍을 증명이라도 하듯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5년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37번)를 내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진이정은 급성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가 예전의 광휘를 잃고 있지만 ‘세계사 시인선’은 긴 호흡으로 시선을 멀리 둔다. 이경호 세계사 주간은 “치열한 시를 우대했던 초발심을 잃지 않기위해 7월 최승호를 시작으로 올해중에 이승훈 정진규 이하석 등 초창기 멤버들의 신작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사는 3일 오후3시30분 시인선 100권 발간을 기념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 태평양관에서 정현종 유안진 김정환 김정란 등 10여명의 시인이 참가하는 시 낭송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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