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주 44시간인 법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주 5일 근무)으로 단축하는 문제가 중대한 사회 현안으로 떠올랐다. 노동계의 거센 요구에 등을 떠밀린 정부가 최근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법 개정 의지를 밝히자 재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아직 이르며 한발 양보해도 임금이나 휴가일수의 축소 없이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임금을 삭감하지 않고 근로시간이 단축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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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삶의 질 향상위해 불가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다.
장시간 노동은 산업재해의 빈발, 과로사, 만성적 피로와 스트레스 가중, 가족생활의 피폐화, 자기개발 기회의 상실 및 노동의 효율성 저하 등 각종 부작용을 초래한다. 따라서 노동자를 비롯한 국민대중의 삶의 질 향상과 기업경영의 효율성 향상 그리고 지식기반형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위해서도 노동시간 단축은 필요하다. 이것은 현 정부의 국정운영기조 중 하나인 생산적 복지의 핵심적 사안이다.
사용자는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임금비용이 상승한다며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은 기계설비 및 작업방식의 개선 등 사용자측의 대응변화와 노동자측의 노동의욕 증진 등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다. 아울러 이직률 감소, 산재발생 감소 등에 따른 노동비용의 절감과 내수확대, 선진국과의 무역마찰 해소 등 긍정적 효과도 있다.
선진국의 경우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추진됐는데, 고용 유지 및 창출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규모에 비해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있는데 주요 선진국의 주 40시간 노동 및 5일 근무제 도입시점인 30년대나 60년대는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훨씬 낮았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임금이 삭감돼야 한다는 사용자측의 주장은 현실성 없는 대안이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임금감소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졌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소득의 감소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89년 주 44시간 노동 법제화 때 임금소득의 감소가 없었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생기는 추가적 여가와 여가선용을 위한 비용을 감안하면 오히려 임금보전의 필요성은 높아진다.
원칙적으로 볼 때 법정노동시간 단축은 임금과는 무관하다. 다만 월급제 등의 경우 시간단축으로 시간당 임금은 올라가는데 이것도 사용자측의 주장과 달리 그 비용이 그리 크지 않다. 시간단축의 생산성 증대 효과를 고려하면 그 비용이 상쇄된다. 주 5일 근무제의 경우 4시간 노동을 위해 투입되는 전력비 등의 에너지 비용과 제반 관리비용의 절감 효과 등을 보면 명확해진다.
실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잔업수당 할증률이 현재 50%에서 더 줄어야 한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현재 잔업이 늘어나는 이유는 사용자측에서 볼 때 신규인력 사용보다 기존인원으로 잔업을 시키는 것이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신규인력의 경우 제반 간접비용과 해고비용 등이 추가되는데 현재의 잔업수당 할증률로는 잔업을 시키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따라서 외국처럼 잔업수당 할증률의 경우 초과 누진적 할증률, 예컨대 잔업 1시간은 50%, 2시간은 100% 등으로 잔업 유인을 줄여 나가야 한다.
실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휴일 휴가를 모두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현실성이 없다.
왜냐 하면 노동자가 휴일 휴가를 사용하고 싶어도 기업주나 동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고 구조조정으로 사람이 부족해서 휴일 휴가 사용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것이다.
또 탄력시간제도 도입도 거론되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고, 현재도 주단위 월단위의 탄력적 시간제도가 도입돼 있고, 과거 장시간 노동의 핵심적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던 것이 변형근무제와 같은 탄력적 근무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노동시간 단축과 탄력적 근무제를 연계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끝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법정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것과 공무원의 주 5일 근무제 및 학생들의 주 5일제 수업 등 공공부문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법정노동시간 단축 여부는 이미 노사정위원회 ‘근로시간 단축 특위’에서 ‘연내 입법화’로 합의됐으므로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으나, 노동시간 단축 유형이 나라마다 다르고 우리나라 노사관계와 노동현실을 볼 때 특별히 정부의 역할이 강한 한국사회의 특성과 수많은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노동시간 단축은 법정노동시간 단축을 통해서만 실효성이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이남순
[약력]
△1952년 경기 화성군 출생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조흥은행 노조위원장 △전국금융노련 위원장 △한국노총부위원장겸 사무총장 △한국노총 위원장
▼반대 "인건비 늘어 경쟁력 약화"▼
경영계는 현재 경제정황에서의 법정근로시간 단축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입장의 배경에는 간단명료한 2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현시점에서의 법정근로시간 단축은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것과 또 다른 사유는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해온 선진외국의 교훈을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 5일 근무를 상정하는 법정근로시간 단축이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의 내용은 이렇다.
주 40시간 또는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연간 휴일 수는 현재의 105∼110일에서 157∼162일로 늘어나며 최다 휴일제도를 갖고 있는 프랑스를 능가하게 된다. 여기에 단체협상상의 경조사 등 휴가를 포함하면 개별적으로 휴일 수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선진외국의 경우 경조사 휴가는 주어진 자신의 휴가일수에서 사용하는 것이 정착된 관행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그리고 법정근로시간 4시간 단축은 14%의 임금인상 효과와 그 부수 효과를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25∼30%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추산이 나온다.
이렇게 1년의 반에 가까운 휴일제도와 인건비가 고율 상승한다면 우리가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선진외국의 교훈으로 참고해야 할 점은 어느 나라나 예외없이 실근로시간이 법정근로시간과 같은 수준이거나 적을 때만 근로시간 단축을 법으로 제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경제 사회적 파장과 역효과를 우려해서 그런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주장은 현재 주당 48시간으로 돼 있는 실근로시간을 실제로 단축하는 방안을 먼저 노사정이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산술적 계산에 의하면 1년차 근로자의 경우 연월차 휴가(22일), 법정 공휴일(18일), 그리고 단협에 의한 별도 휴가 등 휴일을 전부 사용할 경우 실근로시간이 주당 38시간 수준이 된다는 추산도 나온다.
법정근로시간 단축여부는 경제 규모와 그 수준, 생활수준, 경제 체제, 산업의 구성 등 그 나라 특유의 경제사회 시스템과 연계해 고려돼야 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좋은 지표가 된다.
세계 138개 국가 중 법정근로시간이 주 44시간 미만인 나라는 53개국이다. 이 53개국 중 38개국이 1인당 GDP가 1만달러 미만인 나라들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적도 주변국이 아니면 옛 사회주의국가들로 나름대로 사회 기후적 특수성이 있다. 나머지 15개국이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복지국가들로 1인당 GDP가 모두 2만∼3만달러를 넘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또 우리의 경쟁국인 싱가포르 대만 같은 나라는 우리보다 훨씬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44시간 이상의 법정근로시간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는 법정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으로 삶의 질 향상을 내걸고 있고 장시간근로로 인한 높은 산재율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대근로시간국가라는 불명예를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실제근로시간 단축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98년도 기준 1인당 GDP가 OECD 평균치의 3분의 1 수준임을 감안할 때 하루에 1∼2시간 더 일하는 것을 불명예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치스럽다고 본다.
노동계는 실근로시간을 줄이려면 법정근로시간 단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는 현실에 대한 이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