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실질적인 일을 일삼지 않고 공허한 학술만을 좋다고 생각하고 진실은 추구하지 않고 先人의 말만을 위주로 한다면 그것은 진정 성인의 도가 아니다.’
秋史 金正喜(1786∼1856)의 實事求是論이다. 근자에 이 말이 人口에 膾炙(회자)되고 있는 것 같다. 漢나라 때 나온 이 말은 중국 학자들이 학문을 하면서 金科玉條(금과옥조)로 여겼던 治學金言(치학금언)이었다.
이 말의 뜻은 매우 함축적이다. 實事의 경우 문구에 집착한 나머지 본의를 상실하는 우를 경계하면서 공허하고 思辨的(사변적)인, 한마디로 영양가 없는 말의 盛饌(성찬)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의 수레바퀴를 굴릴 수 있는 굴대로서의 학문을 뜻한다. 實用을 강조하면서 實踐躬行(실천궁행)을 鵠的(곡적)으로 삼았던 實學과도 상통하는 의미라고 하겠다.
求是는 求眞, 즉 진리의 추구다. 학문에 요구되는 당연한 命題이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옛 성현의 말씀이라고 무조건 맹신하거나 비판하기보다 정확한 근거에 의해 斷案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淸나라 때 유행했던 考證學(고증학)이 그러했다.
實事求是는 어느 시대든 중시되던 德目이었으며 앞으로도 추구해야 할 바다. 그러나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實事의 ‘事’와 求是의 ‘是’에 대한 명확한 정리다. 즉,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나는 實로 여기지만 虛일 수도 있으며 혹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非일 뿐이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 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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