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연기를 채 시작하지도 못 했을 어린 배우에게 신화로 남은 형의 이름은 어떤 의미였을까? 성난 눈동자로 응시하면서도 부서지기 쉬운 영혼을 내비쳤던 리버 피닉스. 스물 셋에 죽었기 때문에 영원히 타락하지 않을 그는 동생 호아퀸 피닉스(25)에게 일종의 굴레일 수밖에 없었다.
리버 피닉스가 클럽 바이퍼 룸 앞에 쓰러졌을 때 다급하게 911을 호출하던 그의 목소리는 전파를 타고 전세계에 퍼졌다. 그것은 일종의 범죄였다. 호아퀸은 함께 50대가 될 날을 이야기하던 형을 잃었고, 상처에서 벗어나 다시 연기를 시작했을 때에는 항상 '리버 피닉스의 동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틈에 혼자 남겨졌다.
그는 형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를 인터뷰한 기자는 "800파운드가 나가는 고릴라처럼" 리버 피닉스가 방 안의 공기를 메우고 있다고 느꼈다. 에 호아퀸을 기용한 감독 구스 반 산트의 말에 의하면 "그는 매스컴에 짓눌려 있었다".
사실 그는 '피닉스'라는, 한때 변치 않을 젊음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너무 강렬한 탓에 불길한 느낌을 전하는 그 성(姓)만으로도 형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연기하는 인물들 역시 이른 나이에 사라진 리버 피닉스의 파괴적인 이미지와 닮아 있다. 빗나간 길로 나가는 의 지미는 수잔(니콜 키드먼)에게 눈이 멀어 살인을 저지른다.
암울한 아이젠하워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에서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상처 입는다. 욕망으로 뒤틀린 은 그가 "항상 내부에서 끓어 넘치려 하는 분노"를 방향 없이 터뜨리게 만든 영화였다. 젊기 때문에, 항상 문제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시기. 그보다 몇 년을 앞서 형이 통과했던 불안의 시기를 호아퀸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내는 듯했다.
그러나 상처 입은 입술과 굶주린 눈동자의 호아퀸은 우상처럼 빛나는 리버 피닉스보다 어둠 속에 웅크린 숀 펜과 더 가깝다. 그는 지나치게 발달한 근육과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텅 빈 머리를 가진 지미 역을 자청했다.
의 불량한 맥스는 잡힐 수 없는 젊음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는 뒷골목 인생일 뿐이다. 그는 어두운 곳을 찾아 헤맨다. 의 불안정한 독재자 코모두스로 그를 선택한 리들리 스코트는 이 "어둠의 왕자"에 호아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인물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단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죽이며 눈물 흘리는,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누이를 보내며 이를 악무는 코모두스. 금방이라도 파열할 듯 날카로운 신경을 가진 호아퀸은 리버 피닉스의 뒷모습과도 같다.
그러나 현실의 호아퀸은 약물 과용으로 죽은 형의 교훈을 잊지 않는다. 히피였던 부모에게 자유로운 정신을 배운 그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느낌이 생겼을 때" 돌아오기 위해 "어린 시절, 무언가 텅 빈 듯한 부분을 채워 주었던" 연기를 떠났다.
"경험을 위해 그리고 리들리 스코트와 일하기 위해" 블록버스터 를 택했고 자신의 경력을 단호하게 통제할 줄도 안다. 그럼에도 에 함께 출연한 동료 배우 빈스 본은 "매우 모호하고 감정적인 면을 가졌다"고 그를 평한다.
10대의 나이에 멕시코와 중앙 아메리카를 떠돌았던 그의 보헤미안적 기질은 형을 잊지 못해 수그러들었고 흔적만을 남긴 것이다. 그는 아직도 '리버'라는 이름을 발음하는 대신 '내 형'이라고만 말한다.
그는 앞으로도 한동안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은 형을 되새겨야만 하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축복일지 모른다. 형은 그와 함께 50대를 맞지 못하고 떠났지만 "사람들의 느낌을 깨닫고 그것을 사용할 줄 아는 배우" 호아퀸 피닉스는 아주 오래 살아남을 것이므로.
김현정(parady@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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