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에 나타난 몸 톰 플린지음/예경 펴냄▼
1847년 프랑스 파리. 미술평론가들이 하나의 조각품을 놓고 편을 갈라 일대 논전을 벌였다. 문제의 조각품은 프랑스 조각가 클레젱제의 ‘뱀에 물린 여인’. 뱀에 물려 고통스럽게 쓰러져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관능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맥박이 뛰는 대리석 살갗 아래 젊은 혈기가 흐른다. 만일 이 하얀 요부를 만져볼 수만 있다면 생명의 온기까지 느낄 수 있으리라. 사람을 본떴다기보다 직접 주조한 것 같다.”
“살아 숨쉬는 신체에 대한 환영을 불러 일으키는 데 성공했지만 조각가의 진정한 길은 이런 것이어선 안된다. 고상한 이념(이데아)은 온데 간데 없고 육체적 열정만을 자극할 뿐이다. ”
당시 논란의 핵심은 놀랍게도 ‘너무나 사실적’이라는 것이었다. 관능적인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너무나 사실적이기에 관능적이었다는 생각 때문에.
그럼, 몸을 사실적으로 조각한다는 것이 왜 문제가 된단 말인가. 영국의 미술학자가 쓴 이 책은 바로 이 점을 추적한다. 기본적으로는 서양 조각에 나타난 몸의 변천과 사회문화적 의미를 고찰하고 있지만 정말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과연 어디까지 실물과 똑같게 조각할 것인가’의 문제다.
생명과 영혼을 지닌 인물상을 창조하려는 욕망은 조각가의 숙명이다. 그리고 조각가의 그러한 욕망이 서양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발전의 계기가 되어왔다.
16세기초 고대 로마의 라오콘상(기원전 1세기)이 발견되면서 서양 조각가들은 해부학에 입각한 신체의 사실적인 표현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탈리아 조각가 지암볼로냐의 작품 ‘팔레스타인을 도륙하는 삼손’에서 드러나듯 16세기 중반엔 몸의 재현을 넘어 역사의 극적인 스토리까지 담아냈다. 저자는 이것이 더욱 적극적으로 몸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17세기 바로크시대, 이탈리아 조각가 베르니니는 ‘성녀 테레사의 환희’란 대리석 군상에서 테레사의 정신적인 환희와 절정의 순간을 기막히게 표출했다. 인간의 영혼까지 불어 넣은 것이다. 서양 조각은 이렇게 몸과 함께 발전해나갔다.
그러나 ‘뱀에 물린 여인’을 둘러싼 논쟁처럼, 실물에 필적할 만한 몸 조각상이 나올 때마나 뜨거운 논쟁이 뒤따랐다. 저자는 논쟁의 원인을 서양 미학의 전통에서 찾는다. 눈에 보이는 자연 사물보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실재, 즉 이데아를 우위에 두었던 서양 미학, 서양 철학의 이분법. 그래서 조각상이 실물과 흡사하면 오히려 그 가치를 폄하했던 것이다.
“서양에서 몸을 사실적으로 조각하려는 조각가의 욕망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그리고 서양 조각사는 몸을 둘러싼 갈등과 긴장의 역사다.”
몸을 바라보는 시각과 표현 방식은 변해도 몸이 조각의 중심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20세기말, 퍼포먼스가 ‘살아있는’ 몸 조각품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그래도 여전히 남는 의문. 몸의 조각은 과연 어디까지 사실적이어야 하는지.
하지만 이 책은 그 한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예술이란 갈등과 긴장 속에 존재하는 것, 그 운명 때문이 아닐른지…. 김애현 옮김. 190쪽,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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