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사 전상운 지음/사이언스북스펴냄▼
2년 전,‘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란 제목의 책이 나온 적이 있다.
이 제목은 물론 반어법적 표현이다. 한국에도 과학사는 있다. 그러나 과학사를 통사적으로 엮어낸 제대로 된 책은 없었다. 이제 이 책이 그 공백을 메울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처럼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국 과학사의 면면을 총망라한 경우는 거의 없다. 평생을 한국 과학사연구에 매달려온 72세 노학자의 연구 결실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 역작이다.
사실, 우리 주변의 문화유산을 둘러보면 상당수가 과학 그 자체다. 해시계 물시계 거북선 뿐만이 아니다. 석굴암은 치밀하고 정교한 기하학적 설계, 자연을 활용한 절묘하고도 완벽한 온습도 조절이 있기에 가능했다. 석굴암은 뛰어난 예술이자 과학이다.
어디 이뿐인가.
고분벽화엔 1000년 넘게 변하지 않는 안료를 만들어낸 과학기술이, 무구정광다라니경엔 종이 제작 기술이, 청자엔 유악과 흙과 불의 조화를 통해 비색을 만들어 냈던 과학기술이 숨어 있다.
저자는 하늘의 과학(천문관측 해시계 물시계 지전설 등), 흙과 불의 과학(금속 토기 청자), 한국의 인쇄 기술, 땅의 과학(지도)로 나누어 한국 과학의 통사를 장르별로 풍부하게 소개한다.
이 책에 따르면 한국 과학사는 기원전 4,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숭실대박물관에 소장 중인 청동 다뉴세문경(잔줄무늬 청동거울). 지름 21㎝에 0.3㎜ 간격의 평행선이 1만3000여개가 그려져 있는 그 정교함. 수많은 동심원과 그것을 등분해 삼각형 사각형을 만들어낸 그 현란하고 정확한 제도(製圖)는 요즘의 주조 기술을 무색케 할 정도다.
저자가 강조하는 우리 과학 문화유산의 특성은 그것이 탁월한 예술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 바로 한국 과학의 독창성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래서 “젊은이들이 우리 전통 과학을 통해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지혜와 긍지를 배웠으면 한다. 우리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라”고 강조한다.
과학 속의 한국 예술, 예술로 승화된 한국 과학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책. 그 발견은 단순한 골동 취향이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이다. 444쪽 3만5000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