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처음 중국을 방문했던 때는 지난 83년 6월이었다. 김일성이 자신의 후계자로 사실상 공인된 김정일을 덩샤오핑(鄧小平)을 비롯한 중국공산당의 수뇌부에 소개하기 위해 동반했던 것이다.
이 자리에 통역으로 배석했던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는 뒷날 이렇게 회고했다. “김일성은 덩 영감에게 내 아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김정일을 인사시켰다. 김정일은 아주 공손하게 인사했으며 덩은 김정일을 예의바른 청년이라고 칭찬했다. 김정일은 총명해 보였으며 담력과 판단력을 겸비한 것으로 보였다. 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계자로 중국공산당의 공인을 받은 셈이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방문이 그 때는 전혀 발표되지 않고, 꼭 1년이 지나서야 북한에 의해 공개됐다. 이렇게 볼 때, 이번의 방중이 귀국 직후 발표됐다는 사실은 확실히 시대적 변화를 실감하게 만든다. 비밀주의적 비잔틴 외교방식에 익숙한 두 공산국가도 투명성을 강조하는 세계적 조류를 거부하는 데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우선 관심을 갖게 되는 대목은 남쪽에서 평양을 찾아가기에 앞서 북쪽은 베이징(北京)을 찾아갔다는 사실이다. 남쪽은 앉아서 맞이하고 베이징은 찾아가 만나는데서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북쪽 전술의 치밀함을 읽게 된다.
우선 김정일은 세계적 이목을 자신에게 쏠리게 하는데 성공했다. 숱한 수수께끼와 궁금증의 대상이 된, 그리하여 좋건 안 좋건 간에 수많은 설(說)의 주인공이 된 대외(對外)은둔적이고 신비적이기조차 한 그의 장쩌민(江澤民) 중국공산당 주석과의 극적인 회담의 공개는, 그리고 장주석과의 서로 활짝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의 공개는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그가 세계 언론의 초점을 선점했음을 뜻한다.
게다가 중국 외교부의 공식설명은 그에 대한 ‘포지티브 이미지’(긍정적 인상)를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담배는 아예 끊었고 술은 포도주로 적게 마시며 아주 건강하다는 설명, 두뇌회전이 빠르다는 설명, 개방과 개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설명 같은 것들은 그가 술꾼이며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난폭자’일 것이라는 일부의 부정적 추측을 한꺼번에 밀어내는 효과를 거뒀다.
남북정상회담을 장주석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공식 설명 역시 그에게는 큰 도움이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중국과의 공조와 유대를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이것은 남북정상회담의 의제에 대해, 예컨대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개발을 의제로 삼아야 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한미간에 이견이 있다는 외신과 대조된다.
그런데 한 가지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 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김정일이 미국을 위주로 생각하던 방식에서 남북 당사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중국 외교부의 공식 설명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은 한반도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북한과 미국이 먼저 회담을 하고 그 뒤에 한국을 참여하게 하며, 또 평화협정은 일차적으로 북한과 미국 사이에 맺어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 노선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인가?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글자 그대로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지난 몇 해 동안 보여주었던 외교적 노력을 포기하겠다는 뜻이었다면 우리의 판단은 다각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미-중 갈등이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이는 장래에 대비해 중국으로서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접근을 막고 북한을 여전히 중국의 영향권 아래 묶어놓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을 터인데 북한이 여기에 동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남북 당사자 원칙이라는 것은 물론 당연하며 우리 역시 지지한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에는 미군 철수 요구의 논리적 근거로 쓰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 합의 발표문이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자주의 원칙을 앞세운 7·4 남북공동성명을 강조했음을 상기할 때, 김정일의 남북 당사자 원칙은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
평양회담이 ‘만나는 것만으로도 역사적’임은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것을 주문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주장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북의 행보가 매우 전략적으로 빨라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로서도 그 수준을 넘어서는 성과를 얻을 수 있게끔 보다 더 체계적이고 보다 더 신중해야 하겠다.
김학준h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