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가 90년대초의 침체기를 벗어나 지금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94년부터 우리 곁에 밀려온 인터넷 비즈니스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인터넷 관련업체에 대한 벤처캐피털의 투자가 98년보다 6배 늘어난 199억달러에 달했고 투자받은 인터넷업체 수도 1800개나 됐다. 나스닥에서도 인터넷 관련 주가는 계속 상승했다.
그러다 올들어 3월 이후 인터넷 부문을 필두로 주가가 폭락, 나스닥은 조정기에 들어갔다. 전자상거래의 기수로 꼽히는 아마존닷컴의 주가는 113달러에서 47달러로 떨어졌고 e트레이드는 62달러에서 15달러로 추락했다.
현재 시장가치 1위인 인텔은 145달러에서 118달러로, 2위인 시스코시스템스는 82달러에서 55달러 수준으로 떨어졌으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작은 편. 상장기업의 주가 하락은 아직 상장하지 못한 기업에 대한 벤처 투자도 위축시켰다.
이런 충격 때문에 잘 진행되던 비상장 소규모 벤처기업과 상장된 대규모 벤처기업간의 인수합병 협상이 결렬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처럼 주가 하락으로 인한 단기적 어려움은 있으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번 조정 과정이 오히려 증권 시장의 기반을 장기적으로 튼튼하게 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제대로 된 수익모델과 구체적인 실행 능력도 없으면서 인터넷 붐에 편승해 기업가치만 높게 평가받아온 경쟁력 없는 벤처기업들이 시장의 자정 메커니즘에 의해 걸러지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잘 버틴 기업들에는 앞으로 본격화할 e비즈니스의 기회가 더 큰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인터넷과 e비즈니스의 앞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아직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도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비유처럼 실리콘밸리의 벤처 기업인들은 여전히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자신감에 차있다.
인터넷 사업에선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경쟁관계인 두 인터넷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7대 3으로 기울어지면 8대 2, 9대 1로 기울어지는 것은 일반 제조업시장에서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된다. ‘클릭’만으로 다른 사이트로 옮겨갈 수 있어서 교체 비용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는 일단 고객이 한번 방문하면 영원한 고객으로 묶이는 ‘찐득찐득한(sticky) 사이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인터넷의 속성상 좋은 내용을 가진 사이트에는 고객이 많아지고 고객이 많아지면 내용이 더욱 좋아지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궁극적으로는 부문마다 1∼3개 사이트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대규모화 경쟁에서 다 없어져버릴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의 여러 영역 중에서 80%는 이미 임자가 정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후발진입자가 e비즈니스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이제 특화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 실리콘밸리에서는 ‘가능성’만으로는 기다리다 지친 투자가를 설득하기 어렵다. 상당한 매출을 이미 내고 있거나 순이익을 낼 수 있는 잠재력과 실행능력을 갖춘 인터넷 회사만이 투자를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온라인 증권계의 선두주자인 찰스 슈왑처럼 온라인 거래와 오프라인 거래가 동시에 가능한 회사가 경쟁력이 높다는 견해가 더 설득력이 커지고 있다. 무한한 인터넷의 바다와 우리가 숨쉬는 세상이 만나는 곳, 그곳에 더 큰 기회가 있다.
배종태(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미국 스탠퍼드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