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사는 권모씨(36)가 두달전 회사에 6개월 육아휴직을 신청했을 때 젊은 동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육아휴직의 길을 뚫어달라”는 것이었다. 아내(33)의 2개월 출산휴가가 끝났으나 아기돌볼 사람이 없었다.
“아내보다는 제가 육아휴직하기에 여건이 나았고, 그래서 제가 하기로 한 것이었어요. ”
그는 “대체인력이 없다”는 논리를 펴는 회사측과 실랑이를 벌이다 5월 한달 휴직에 만족해야 했다.
울산 북구청 직원 신모씨(35·행정 7급)는 생후 11개월된 딸을 돌보기 위해 5일부터 1년간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아내가 초등학교 교사인 신씨는 “그동안 친척 등에게 아이를 맡겨 키웠으나 어려움이 많아 직접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했다”고 말했다.
아빠의 육아휴직이 이제 해외토픽만은 아닌 것일까? 우리사회에서 남자는 물론 대부분의 여자직장인에게 육아휴직은 아직도 ‘그림의 떡’이다.
여성특별위원회 홈페이지 ‘나도 한마디’에 ‘여성공무원은 휴직도 못하나요’란 글을 띄운 박미정씨는 “후임자가 없어 뒷일이 걱정되고 옆에 있는 직원들에게 업무부담을 주기 싫어서라도 휴직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행정자치부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지난해 ‘육아휴직제도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1997∼98년 2년간 육아휴직을 이용한 여성공무원은 1세 미만 자녀를 둔 대상자 1만5818명 중 1051명으로 6.6%에 불과했다.
3세미만의 자녀를 둔 남녀공무원 모두에게 “앞으로 육아휴직을 하겠는가”고 물었더니 대상자 5만6651명 중 6932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여성공무원이 3452명, 남자공무원이 3480명으로 남녀에 차이가 없었다.
이 조사를 담당한 김경희사무관은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답한 남자공무원들도 실제 신청은 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울산 북구청 직원이 첫 케이스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사무관은 “올해부터 기관장이 육아휴직신청에 대해 무조건 허가하도록 강제규정화한 것은 제도권에서 육아휴직을 보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기업체에서의 육아휴직은 더더욱 어려운 일. 육아휴직은 커녕 임신과 출산 등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여성노동자들의 불만이 속속 여성단체 등에 접수되는 실정이다.
노동부는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7일까지 종합병원 242곳과 대형 유통업체 168곳을 대상으로 육아휴직 특별지도점검을 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남자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지 파악할 계획”이라며 “남성들이 의식적으로라도 많이 사용해야 양육의 공동책임자로서 의무와 권리를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 박봉정숙 사무국장은 “특히 남자직원이 육아휴직을 할 경우 ‘자리를 떠나고 싶은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며 “법이 사문화되지 않도록 법에 명시된 권리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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