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그램 북 그룹'(Ingaram Book Group)은 세계 최대의 출판기업이다. 서적 도매가 주력이지만 수십종의 잡지와 단행본도 낸다. 연간 매출액이 20억달러를 넘는다. 미국 최대의 도서 소매 체인인 반스앤노블(Barnes & Noble), 최대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닷컴(amazon.com) 등 세계의 주요 서적상이 고객이다.
이 기업을 한국인 사장 지용석씨(39)가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기자는 시카고에서 열리고 있는 영어권 최대의 도서 견본 시장인 북엑스포 아메리카(BEA) 행사장 한가운데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인그램사 부스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30여명의 직원들과 똑같이 파란 유니폼을 입고 분주히 상담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마케팅 담당 직원인줄 착각했다. “세일즈를 하는데 사장이냐 직원이냐 가릴 이유가 있나요?” 그는 하루 스케쥴을 20,30분 단위로 쪼개가면서 릴레이 상담을 벌이고 있었다. 비는 시간에는 유명 출판사 간부나 저명한 작가들이 내미는 손을 일일이 잡아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도미한 지씨는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나와 21세에 컬럼비아대 경영학대학원을 졸업했다. 금융회사인 아멕스(American Express)에 스카우트돼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92년 인그램 그룹에 입성했다.
대학 친구였던 존 인그램(현 인그램그룹 회장)과 지씨를 친아들처럼 여겼던 인그램 회장의 권유가 있었다. 컴퓨터 도매업으로 연 320억 매출을 자랑하는 잉그램 마이크로사 유럽 총판장을 맡았고 96년에는 인그램 북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그램과 긴밀한 관계인 아마존닷컴의 ‘배후’에는 그가 있다. 아마존닷컴의 최고경영자인 제프 베조스는 그의 대학 2년 후배로 절친한 사이. “제프가 95년쯤에 인터넷 서점 사업을 제안했어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저희 같은 도매상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죠.”
지씨는 미래 지향적인 사업에서 탁월한 안목을 보였다. 일례가 3년전 세계 최초로 시작한 ‘주문형 출판’(POD:Print On Demand)이다.
이에 맞는 제작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독자가 온라인으로 주문한지 20초만에 책을 만들 수 있는 노하우를 갖게 됐다. POD 부문은 사업성도 높아 지난달에만 25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매달 20%씩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라이트닝 소스(Lightning Source)란 회사를 만들어 일찌감치 e북 솔루션 개발에도 앞장 선 것도 그중 하나.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야심적으로 선보인 e북 뷰어 프로그램 ‘마이크로소프트 리더’에서 보안 부분을 제외한 핵심기술중 상당수를 제공했다.
현재 지씨는 대학 때 만난 한국인 부인과의 사이에 11세 9세 된 딸을 두고 있다. 20여년간 미국에서 살았지만 한국 국적을 포기하기는커녕 흔한 미국식 이름조차 쓰지 않는다.
성공의 꼭대기에서도 더 이루고 싶은 것이 았을까. “고아원을 지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특히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는 10세가 넘은 고아를 대상으로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는 아동학대 금지 같은 사회사업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많이 버는 것은 많이 도우라는 뜻”이란 말을 강조하는 것을 보니 “몇 년내에 모든 사업에서 손을 털고 내 꿈을 실행하겠다”는 것이 빈말 같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