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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전진우/李의장의 '정치생명'

입력 | 2000-06-06 19:14:00


정치인은 이해와 현실을 좇고, 정치가는 시대와 역사를 읽는다고 하던가. 하기야 그런 평가 역시 훗날 역사가 내릴 것이니 현존하는 여러 정계 인사 가운데 누구는 ‘정치인’이고 누구는 ‘정치가’라고 미리 점찍어 말하기란 어려울 터이다. 하나 우리의 반세기 현대 정치사에서 이 분이야말로 ‘정치가’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될까.

▷왜곡된 정치 현실을 빗대어 하는 말이겠지만 흔히 정치인의 정치 생명은 귀신도 모른다고 한다. 이를테면 중국의 문화혁명 때 젊은 홍위병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이 거뜬히 재기해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되리라고 당시 누가 감히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굳이 나라 밖 인물의 예를 들 필요가 있으랴. 나라 안에도 끈질긴 정치 생명을 과시하는 정치인들이 한둘이 아닌 마당에. 다만 한 가지 유념할 일은 그들을 감히 ‘정치가’ 덩샤오핑에 견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엊그제 16대 국회 전반기 의장에 선출된 이만섭(李萬燮)신임 의장은 “양심과 정치 생명을 걸고 공정한 국회 운영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국구 의원이어서 당장 민주당 당적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오늘부터 마음 속으로는 당적을 이탈했다”며 절대 중립을 강조했다. 그는 또 “국회에서 날치기란 말은 영원히 사라지도록 하겠다”며 국회가 더 이상 대통령 지배하의 ‘통법부(通法府)’가 되게 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의장은 첫번째 국회의장이던 93년 12월, YS정권의 예산안 강행 처리 요구를 거부했었던 만큼 단지 ‘해보는 말’은 아닐 듯 싶다. 그러나 3공이래 정치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권력의 양지’에만 의탁했던 그를 보는 눈길이 따뜻하지만은 않다. 그가 말하는 ‘중립’이 어느 선까지 지켜질지도 미심쩍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의장이 8선의 ‘원로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진정한 정치 생명과 명예를 생각한다면 이런 세간의 우려를 스스로 털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때 그는 ‘현실 정치인’ 아닌 ‘시대의 정치가’로 재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