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일의 는 간결체 영화의 정수다. 범상한 범죄 영화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새롭고 독특하며 어떤 틀에도 속하지 않는 영화라는 느낌을 준다.
신주쿠에서는 형사도 야쿠자도 다 똑같다. 형사 나카야마는 야쿠자 조직에 정보를 흘려주고 돈을 챙긴다. 나카야마와 결탁한 한국인 정보원 히데요시는 나카야마의 정부이자 상해 유민 범죄조직 두목 모모를 짝사랑하고 있으며 모모는 한국계 야쿠자 조직 두목인 곤다의 정부이기도 하다.
얽히고 설킨 이들의 관계는 돈의 이해관계와 욕정이 서로 뒤얽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종잡을 수 없다. 도무지 가능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도덕과 윤리가 사라진 세상에 대한 격렬하고 잔인하고 참혹한 세상 묘사는 아벨 페라라의 를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에는 나카야마와 히데요시, 형사와 정보원 사이의 애매 모호하고 이상한 우정 관계도 들어 있다.
최양일식으로 비틀어 복잡하게 버무린 일본 신주쿠판 이라고 할까.
는 관습적인 깡패 영화의 틀을 따라가는 것 같지만 새롭고 독특하며 어떤 틀에도 속하지 않는 영화라는 느낌을 준다. 등장인물은 서로 먹히고 먹는 먹이 사슬구조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주체하지 못하는 욕정으로 허둥댄다.
'개'가 '달린다'는 제목으로 요약한 등장인물의 삶은 개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며 달리는 삶이다. 그것은 영화 속 등장인물에 대한, 그리고 신주쿠에서 펼쳐지는 삶에 대한 지독한 야유다. 아주 가끔 이 영화에는 연민과 사랑과 질투의 감정이 새어나오지만 단 한 순간도 감상적인 순간은 없다.
대단원의 결말이 나오기까지 감독 최양일은 서둘러 감상적인 감정의 분출을 막아버린다. 그야말로 간결체라고 할까. 화면 호흡이 긴데도 장황하지 않고 정확하며 드러나지 않게 감정을 새겨 넣는다.
전작 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복잡한 이야기와 스타일의 호흡을 능숙하게 조화시킨다. 아울러 이 영화에는 에서 봤던 은근한 유머 감각도 배어 나온다.
똑같이 좋아했던 여자의 시체를 처리하지 못해 쩔쩔 매는 두 사내 나카야마와 히데요시가 시체를 건물 한 복판에서 끌고 다니며 낑낑대는 모습을 담백하게 연출하는 것은 윤리와 도덕의 경계 없는 폭력의 폭발과 흔적을 차분하게 담는 이 영화의 저력을 드러낸다.
재미있는 것은 재일교포 감독 최양일이 형사와 범죄자가 짝을 이뤄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이 하드 보일드 버디 영화의 구조에 일본인과 중국인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녹여 넣었다는 것이다. 일본인 나카야마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어디론가 돌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넘쳐 오르는 불안과 격정을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에게는 지켜야할 공동의 선이 없다. 정보원 히데요시와 야쿠자 두목 곤다는 똑같은 한국인이지만 히데요시는 김치를 물에 타 먹고 그런 히데요시를 곤다는 한국인답지 않다고 경멸한다.
상해 여자 모모는 필요하면 언제나 몸을 주는 중국인의 실용주의 노선에 충실한 여자이지만 일본인 형사와 한국인 깡패를 이용하는 실력자로 오르려다 참변을 맞는다. 모두 다 잡놈이고 비열한 것은 똑같지만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최양일은 민족적 정체성을 굳이 구획 짓는 것은 아니지만 실종된 도덕과 생존본능 사이에서 다양한 민족이 충돌하고 연합하며 거대한 용광로처럼 끓고 있는 동경 중심부의 삶을 인상적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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