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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월드컵에티켓(4)]장소 안가리고 "난데…"

입력 | 2000-06-07 19:27:00


4일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폭력을 휘두른 문모씨(30·사업)와 이모씨(26·운전사)를 불구속 입건했다. 두사람이 시비가 붙은 이유는 휴대전화 벨소리 때문. 쉴새없이 울리는 문씨의 휴대전화 벨소리에 옆자리에 있던 이씨가 견디지 못하고 짜증을 냈던 것이다.

현재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전국민의 55.2%인 2700만명선. 휴대전화는 생활필수품이 됐지만 통신예절은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타령부터 팝송까지 다채로운 휴대전화 벨소리는 공연장 도서관, 심지어는 경건해야 할 장례식장에서도 어김없이 울린다. 벨소리뿐만 아니다.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주위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통화하는 광경을 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서울의 외국어학원에서 5개월째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앤서니 패시(28)는 이제 강의 도중 울리는 ‘삐리릭’소리에 많이 둔감해졌다. “처음엔 화도 났지만 지금은 그냥 나가서 통화하고 오라고 합니다. 서구에서는 개인적인 일은 서로 존중해주기 때문에 전화같은 사적인 용무를 공공장소에서 보란 듯이 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캐나다 교포인 김민정씨(25·컨설팅업)는 “휴대전화는 활동이 많은 비즈니스맨처럼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 용건만 간단하게 조용히 통화하기 때문에 휴대전화가 보급돼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라고.

일본도 한국 못지않게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다. 하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일본의 뿌리깊은 생활문화 때문에 휴대전화 소음공해는 별로 없다. 일본에서 10년간 유학생활을 한 박영혜(朴英惠·32·국정홍보처 사무관)씨는 “일본 지하철을 타면 휴대전화 통화를 위해 황급히 다음 역에 내리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부끄러운 휴대전화 문화를 고쳐보자는 움직임도 없지는 않다. 정보통신부는 공연장과 같은 장소에 전파차단장치를 설치해 벨소리를 원천봉쇄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

당국의 규제도 좋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 통화하는 것이 선진 국민의 덕목일 것이다.

kjs35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