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독일 동베를린에 있는 공산주의자 묘지. 지난달 21일 베를린의 요양소에서 92세로 숨진 동독 비밀경찰 슈타시 총수 에리히 밀케의 장례식이 열렸다. 미망인 게르투르드(90)와 아들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장례식은 1700만 동독 주민을 두려움에 떨게 하며 철권(鐵拳)을 휘둘렀던 그의 삶에 비하면 초라해 보였다.
마르쿠스 볼프 전 슈타시 대외첩보부장은 “우리는 한때 같은 길을 걸었으나 견해 차로 갈라섰다”며 “오늘은 그의 장례식인만큼 평화롭게 잠들 수 있도록 그의 삶에 대해 말을 삼가겠다”고 말했다.
그가 묻힌 동베를린 묘지에는 그를 발탁한 초대 동독 공산당 서기장 발터 울브리히트의 무덤과 사회주의자 기념비가 있다.
밀케는 1957년부터 89년까지 32년 동안 슈타시 국장으로 재임했다. 이 기간 중 그는 8만5000명의 정식요원과 수십만명의 비밀 감시요원을 동원, 동독 주민 수십만명을 체포해 수용소나 감옥에 보내는 등 공개적인 테러와 납치로 동독 체제를 지탱한 첨병이었다.
독일 통일 이후 슈타시본부 건물에 세워진 슈타시박물관의 요르그 드리에셀만 관장은 “후세 역사는 밀케를 동독 정권 시절 발생한 모든 테러의 책임자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밀케는 동독정권 붕괴 이후 베를린장벽을 넘으려는 동독주민에 대한 발포 명령에 따른 살인교사와 인권유린, 횡령,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러나 그는 건강악화와 노령,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한차례 풀려났다 결국 나치당원이던 경찰관 두 명을 살해한 혐의로 93년 6년형을 선고받은 뒤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많은 동독주민들은 통일 이후 공개된 수백만장의 슈타시 파일을 열람한 뒤 가까운 친구와 연인이 슈타시 협력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분노하며 밀케에 대한 증오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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