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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이야기]손영태/조선시대 儒醫는 양반출신 의사

입력 | 2000-06-08 20:11:00


공빈 동생의 삐뚤어진 입이 약속한 3일만에 안 돌아오자 임금에게 허언을 한 죄를 물어 허준의 손목은 시퍼런 작두 위에 오른다. 이때 내의원 의관 정작이 손목만은 자르지 말라며 만류하자 어의 영감 양예수는 이렇게 소리친다. ‘당신이 비록 유의라고는 하나 내의원의 기강을 바로 잡으려는 이번 일에는 관여하지 마시오’.

이 대목에서 조선시대 유의(儒醫)라는 독특한 의료인의 성격과 위상이 잘 나타난다. 유의란 신분이 양반(兩班)인 사대부출신의 의사이다. 당시 내의원이나 혜민서의 의관(醫官)들은 대부분 신분이 중인(中人)이었기에 양반 출신 의관은 특별한 존재였다. 이들은 유학과 의술에 정통한 사람들로서 주로 한의학을 이론적으로 연구하고 의생들에게 의서를 강독하며 가끔 의술을 실제 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리행위를 천시하는 유학의 전통적 관습에 따라 의료행위를 생업으로 삼지는 않는 자존심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공직인 의관에 진출한 유의도 있었지만 의관을 중인계급의 천직으로 경시하여 공직에 나서지 않은 전국 각지의 숨은 유의들이 더 많았다. 이들은 역학 음양오행 지리 천문 등 한의학의 기초학문을 바탕으로 의학에 조예가 깊었다. 공식 의관은 아니지만 유의로서 침술에 밝아 침구요결을 저술한 선조 때 좌의정 류성룡과 소아과와 천연두 치료에 탁월했던 다산 정약용이 좋은 예이다.

드라마에서 허준에 우호적인 내의원 유의 정작은 중종 때 내의원 제조를 지낸 정순붕(鄭順鵬)의 아들이자 천문 지리 의학 등에 박학다식했던 유의 정렴(鄭A)의 동생으로서 벼슬은 정육품 좌랑을 하였으며 동의보감의 편찬 초기에 허준과 함께 있었다. 유의는 양반 신분인데다 유가적 의학이론가이기에 비록 내의원의 책임자인 어의영감이라도 유의 정작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허준은 내의원에 진출할 때에도 중종 때 병조판서였던 유의 김안국의 간접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김안국은 당대에 박학다식한 유학자이자 모친이 양천 허씨로 허준의 대고모(할아버지의 누이)이다. 그는 의학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에도 조예가 깊어 허준의 의학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TV 드라마에서 허준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혜민서의 구레나룻 참봉 만경도 양반 출신의 유의로 나온다. 그러나 혜민서의 최하급직인 참봉에 양반 김만경이 만년 근무하였다는 것은 다소 드라마적인 과장이다. 032-651-7823

손영태(부천 명가한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