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27일, 그 때까지 6년간 영화배우 생활을 했던 저는 좀 더 공부를 하고 싶고, 여러 가지 경험을 쌓고 싶기도 해서 잠시 배우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당시 저는 광고모델을 동시에 10편 넘게 할 정도로 제법 인기가 좋은 편이었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등 많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죠. 유학을 떠나며 “내가 빠진 우리나라 영화계는 어떻게 될까”하는 걱정까지 할 정도로 제가 대단한 존재인 줄 알았습니다. 심지어 ‘배우 박중훈’이 빠져 난감해 하는 영화계의 모습을 혼자 상상해보며, 미안해 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내가 대단한 존재로 착각▼
그런데, 그 해 한국영화계는 수많은 화제작을 낳으며, 19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의 원년이 되었고 저 없이도 아주 잘 돌아갔습니다. 사실 더 잘 돌아갔습니다.
1994년에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태백산맥’의 염상구 역을 제의받았는데 다른 영화와 스케줄이 겹치는 바람에 출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척 아쉬워하며, 주제 넘게도 “그 역할에 나만한 적격자가 또 있을까”하고 누가 부탁도 하지 않은 걱정까지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제 걱정과는 달리 영화 ‘태백산맥’은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았고, 또한 염상구 역을 열연했던 배우 김갑수씨도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관객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몇 년전, 관객들이 박중훈의 코미디 연기에 식상하는 것 같아 코미디 영화 출연을 자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역시 내심 한국 코미디 영화가 주춤하지 않을까 우려했습니다. 그런데 송강호라는 배우가 나타나 ‘넘버3’ ‘반칙왕’ 등에 출연하며 극장을 폭소의 도가니로 만들더군요. 또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저는 곧 심광진 감독님의 ‘불후의 명작’을 촬영할 예정이고, 그 영화가 끝나면 이어서 김성홍 감독님의 ‘휘파람’이라는 영화에 출연할 계획입니다. 두 감독님 역시 “당신 이상으로 이 역할을 잘 할 배우가 없어요”라고 저를 추켜세워 주시지만, 저는 더 이상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이 영화에서 이 역할을 맡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발군의 운동선수 한 명이 국가대표팀을 떠난다고 해서, 유능한 기업가 한 명이 경영을 그만둔다고 해서, 똑똑한 정치가 한 명이 은퇴한다고 해서, 과연 국가대표팀을 구성 못하고 회사가 부도나고 나라가 망할까요? 그들의 탁월한 능력 때문에 당장은 다소 불편할 수 있겠지만, 조금 지나면 오히려 더 훌륭한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오만에 빠질때 독선-독재 되는것▼
그런데 왜 일부 사람들은 자기에게 부여된 권한에 겸손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눈과 귀를 막고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는 오만에 빠져 있을까요? 세상에 나 혼자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일이 몇 개나 있을까요? 독선과 독재는 그렇게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망상에서 출발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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