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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성규/견제없는 경영이 기업 망친다

입력 | 2000-06-11 19:38:00


주식회사를 자본주의의 꽃이라 한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로 거대 자본이 형성되고, 전문경영인이 나서서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 경영인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엄격한 견제 장치가 전제돼야 한다.

외국의 사례는 전문 경영자가 초반 1, 2년을 무사히 넘기면 장기 집권이 쉽다는 통계를 보여준다. 그 이후에는 별다른 견제가 없다는 뜻이다. 채권단과 주주의 경영 통제를 따르지 않는 경영자는 언제나 일탈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이사회는 평균 13명, 이중 9명이 사외이사다. 대부분 타기업의 현직 경영인이 겸직한다. 사외이사의 활동은 시장에서 충분히 견제된다. 역할이 부진하면 기업의 성패에 따라 경영자 시장에서 연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배 구조 개선 차원에서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를 제도화하고 있다. 문제는 누구를 사외이사로 하느냐는 것. 채권단이 지배하는 워크아웃 기업에서는 그 실험이 한창이다.

현직 경영자의 사외이사 겸직은 기업 정서상 거부감이 있다. 변호사나 회계사 등도 대안이나, 업무상 이해가 상충될 가능성이 높다. 학계에선 감각있는 인물을 찾기 쉽지 않다. 결국 대안은 채권단 인사로 귀착된다.

보다 질적인 숙제는 지배구조 개선이다. 과거 오너 경영은 지분이 허용하는 법적 권리를 넘어서 대주주가 무한 권리를 행사하고, 견제 장치의 부재로 그릇된 의사 결정이 여과없이 실행되는 문제가 있었다. 오너의 경영 과실이 큰 워크아웃 기업은 감자와 출자 전환으로 소유 구조가 바뀌고 오너의 지분은 미약해졌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타협적이다.

구(舊)사주에 대한 종업원의 정서적 의존도가 여전하고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파악하는 데 구사주의 협조가 필요하며, 영업 노하우가 구사주에 체화돼 있어 구사주가 공동대표로서 기업에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워크아웃 기업의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은 두 가지다. 첫째는 구사주가 명목적 존재 수준을 넘어서 경영권에 집착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전문경영인이 과거 오너의 경영 방식처럼 견제받지 않는 경영권을 행사하려 들 개연성이다.

채권단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은 전문경영인, 과거 오너 경영을 희구하는 기존 경영진의 반발이 보여준 동아건설 사태는 두 가지 가능성이 복합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부정하는 빌미를 제공한 점이다.

경영자란 일을 벌이려는 속성이 있다. 반면에 출자 전환으로 대주주가 된 채권단은 잔존가치가 있는 잔여 채권을 놓고 도박할 이유는 없다. 채권단은 경영자가 관리를 잘해서 기업가치를 보전하는 것이 최선의 바람이지만 재기를 원하는 경영진에게는 답답할 것이다.

워크아웃 기업의 경우 채권단은 경영관리단 파견, 이사회 강화, 전문경영인 선임의 세 가지 견제 장치를 구사한다. 서로의 중복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경영 목표 이행과 회계적 투명성 제고에 비례해서 관리단을 줄이거나 철수하는 것이다. 전문경영인의 자율성이 늘어나는 만큼 이사회 기능은 강화돼야 한다.

사외이사 역시 채권단 인사로부터 경영전략에 대한 검증 능력이 있는 인물로 대체돼야 한다. 이러한 고민도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가 작동하기까지 과도기적이다.

계약과 견제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의 기업 문화에 있어서 지배구조 개선은 비단 워크아웃 기업만의 화두가 아니다. 워크아웃 기업이 먼저 실험하고 있을 뿐이다.

지배구조는 소유구조 개편이나 워크아웃 제도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양심있는 경영인과 주인 의식 있는 자금 공여자, 이들의 힘을 합쳐 이뤄내야 할 문화적 개혁의 문제다. “주인이 있어도 망하고, 주인이 없어도 망한다”는 비판이 상존하는 한, 워크아웃은 물론 우리 기업에도 분명히 미래는 없다.

이성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