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은 무궁무진한 ‘신시장’. 그러나 만개(滿開)하기엔 걸림돌이 한두가지가 아닌 ‘불투명한 시장’.
국내 기업들에 북한은 이처럼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곳이다. 10여년간의 경제교류 역사에도 불구하고 남북경협이 아직 가능성을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남한 기업들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북투자의 불확실성이 제거돼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남북경협이 활성화되기 위한 핵심과제
과제
내용
효과
제도적 장치 마련
경제공동위 가동을 통한 교류협력 부속합의서 이행
투자의 안정성 확보
SOC 등 공적투자재원 마련
-국제 금융기구의 공적 차관 제공
-북일 관계 개선을 통한 공적개발원조 활용
-국내적 공적자금 조성 및 민자유치
북한 SOC 정비로 물류 및 전력 개선
수출환경 개선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추가완화
수출시장 확대
규제완화 및 경협 인식 전환
-국내적인 법제 정비
-안보와 경협관계 정립
경협확대의 공감대 확대
수십년간 막혀 있던 남북한간 경제교류의 문호가 열린 것은 88년 7월이었다. 7·7선언을 통해 남한 정부는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혔고 그해 10월 후속조치로 남북교역 개방조치가 실시됐다.
이듬해인 89년부터 남북교역은 본격적으로 시작돼 첫해 1872만달러의 교역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91년에 교역실적이 1억달러를 넘어서고 95년 2억달러를 돌파,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냈지만 그 속도는 당초 기대엔 크게 못미쳤다.
지난해 남북간 교역실적은 반입 1억2000여만달러, 반출 2억1000여만달러로 총 3억3000여만달러였다. 또 지금까지 남북한 ‘협력사업’으로 승인된 것은 총 16건. 대우의 남포공단 내 삼천리총회사와의 합영사업 건과 현대의 금강산관광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크고 작은 규모로 대북투자에 참여한 기업은 지금까지 약 600개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남북교역은 장기적인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의 속성상 많은 한계를 나타냈다. 특히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의 법적 제도적 특수성은 본격적인 투자에는 장애요인이었다.
남북교역 구조의 단조로움도 이 때문이다. 우리 업체들은 경공업품 설비와 원자재를 반출, 현지임가공을 통해 재반입하거나 3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반면 북한으로부터는 금과 목재 한약재 등 농임산물과 토산품을 들여오는 정도.
따라서 본격적인 남북경협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1차 선결과제다. 90년 8월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92년 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발효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각론’은 아직 정비되지 않은 상태.
이런 조건들이 구체적으로 갖춰지면 정치적 갈등 등 경제 외적인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을 위험도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남한 기업들은 일단 사회간접자본 분야의 투자가 이뤄지면 이에 따른 물자와 인력 반출을 통해 부수적인 교역이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값싼 노동력과 비교우위 품목의 교역을 통한 본격적인 남북협력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다.
mjlee@donga.com
▼北진출 성공기업 '아이엠알아이'▼
‘북한 진출의 첫 관문은 적합한 사업모델 개발이었다.’
98년 북한에 진출한 뒤 평양 대동강구역 공장에서 TV모니터를 생산중인 ㈜아이엠알아이(IMRI).
이 회사는 합영과 단순위탁 임가공의 중간 형태인 ‘IMRI식 사업’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개발해 북한 진출에 성공했다.
국내 기업의 북한 진출 사례가 드물었던 98년초, 북한에 진출한 기업은 대부분 생산설비와 공장운영 비용을 북한과 나눠 부담하는 합영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대우그룹의 남포 의류공장이 대표적 사례. 이 방식은 생산에 관계없이 인건비가 들어가고 공장가동 비용이 높아 중소기업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반면 원자재를 북한에 들여가 생산하는 단순위탁 임가공 방식은 초기 투자비용은 적게 들지만 계획경제 체제의 북한 노동력이 지역 사정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생산이 수시로 중단될 수 있다는 단점이 노출됐다.
IMRI는 이에 따라 두 방식의 장점을 결합해 설비투자는 합영방식, 인건비 지급은 임가공 방식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개발했다.
조봉현 IMRI이사는 “공장과 노동력을 북한이 부담하고 설비투자비와 인건비를 우리가 지급하는 방식을 채택한 뒤 가격 및 품질경쟁력이 높은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력에 민감한 전자제품의 불량률을 남한 공장보다 낮춘 비결은 철저한 생산공정 관리. 평양 대중교통의 전력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감안해 출퇴근 시간대에 제품 생산을 피하고 현장 교육을 강화한 결과 불량률을 30%에서 3% 미만으로 떨어뜨렸다.
viyonz@donga.com
▼북한경제의 현주소/'김정일式 경제개혁' 작년 플러스성장▼
북한의 대외교역 추이
1970년
1980년
1990년
1995년
1998년
99년 상반기
수출
3.4
15.7
19.6
7.4
5.6
2.3
수입
4.0
18.8
27.6
13.1
8.8
4.2
무역수지
-0.6
-3.1
-8.0
-5.7
-3.2
-1.9
극심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는 지난해부터 미미하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소폭의 플러스를 기록해 10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났다. 북한은 이를 김정일 체제가 공식 출범한 98년 9월 이래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추진해온 경제개혁의 성과로 내세운다.
그러나 수십년간의 경제침체로 인해 성장잠재력이 소진된 데다 도로 철도 전력 등 사회간접자본(SOC)이 극도로 열악해 성장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게 대체적인 평가. 북한 경제의 현 주소와 개발전략을 진단한다.
▽북한의 경제지표〓북한당국의 각종 발표를 토대로 한국은행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을 추정한 결과 지난해 북한경제는 플러스 성장을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정확한 성장률은 제시하지 못했지만 성장률 곡선이 상승추세로 전환한 것 자체가 의미있는 진전이라는 분석.
농업과 건설부문을 중심으로 실물경제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철강 화학 운수업종의 지표도 개선됐다. 곡물생산량이 조곡 기준으로 428만t으로 전년보다 40% 늘어난 것을 비롯, 1∼9월중 전력과 석탄생산이 각각 13%와 3% 증가했고 철강생산은 상반기중 80% 늘었다.
북한 내부의 실물경제는 호전됐지만 사회주의 자립경제 노선을 고수한 탓에 대외교역은 감소세가 지속됐다.
북한이 지난해 남한을 포함해 국제사회로부터 지원받은 물자는 98년보다 16.9% 증가한 4억299만달러. 반면 대외교역 규모는 98년 14억4000만달러에 불과했고 99년 상반기중에는 6억6000만달러로 전년보다 더 줄어들었다. 이같은 공식수치에는 미사일 등 비밀 무기거래가 빠져있어 실제로는 늘어날 수도 있다.
남북간 교역은 꾸준히 활성화되는 추세. 지난해 총 교역액이 3억3344만달러로 전년보다 50.2% 증가했다. 특히 남한이 98년과 99년 2년연속 반출초과를 나타내 북한의 대남 의존도가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98년말 현재 북한의 대외채무는 총 121억달러. 이중 대부분이 미상환 상태여서 국제금융시장에서 국가신용도가 바닥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현재 국제 금융계는 북한을 쿠바 미얀마 이라크 모로코 등과 함께 ‘매우 위험한 나라’로 분류하고 있다.
남북경협이 본격화하더라도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의 적극적 참여가 없는 한 미국 일본 유럽 등의 민간기업들이 선뜻 투자하기는 힘든 상황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김정일식 경제개혁으로 돌파구 모색〓김정일식 경제개혁의 골자는 경제관련 제도를 비교적 경제여건이 괜찮았던 60년대 이전 상태로 원상 복구시키는 것. 70년대 들어 도입된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지나치게 경직돼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내리고 보다 유연한 시스템을 갖추려는 취지로 분석된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북한이 ‘제2의 천리마 대진군’을 표방한 것은 외형상 보수적 경제관리를 고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개혁적 조치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50년대말∼60년대초에 채택된 천리마 진군을 다시 끄집어냄으로써 70년대 이후의 경제정책 기조를 포기하는 명분을 확보했다는 것.
김정일식 경제개혁의 주 내용은 △북한특유의 거대 공기업집단인 연합기업소의 해체 △과학기술 개발 △외국인 투자관련법 개정 △수출활성화 등으로 요약된다.
parkwj@donga.com
▼북한 SOC는 어떤 수준?/통신 전력 특히 낙후▼
정상회담 이후 대북 투자가 본격화될 경우 가장 시급한 분야는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시설들. 장기간의 경제난으로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낡은데다 효율성이 떨어져 보수 및 성능개선 작업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송망과 전력 관련 시설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남북한의 주요 사회간접자본 시설 현황 비교
구분(단위)
북한(A)
남한(B)
비교(B/A)
철도 총연장(km)
5,214
6,683
1.3
전철 총연장(km)
4,132
661
0.2
도로 총연장(km)
23,407
110,397
3.7
고속도로 총연장(km)
682
2,678
3.7
항만 하역능력(만 t)
3,501
41,625
11.9
*전화회선수(만회선)
110
2,009
18.3
전화보급률(100명당·대)
5.0
43.2
8.6
발전시설용량(만kw)
738.7
4,340.6
5.9
전력 발전량(억kWh)
170
2,153
12.7
**정유 능력(만BPSD)
7.0
243.8
34.8
▽철도〓북한의 핵심 수송 수단. 총 연장 5214㎞(98년말 기준)의 95% 이상이 단선이며 침목 노반 기관차 등이 노후화 됐고 전력 및 에너지 부족 등의 영향으로 운행속도가 시간당 30∼40㎞에 불과하다. 주요 노선은 △서해안 지대를 잇는 경의선(개성∼사리원∼평양∼신의주) △동해안을 따라 부설된 원라선(원산∼흥남∼청진∼나진) △동서를 횡단하는 평원선(평양∼원산)을 기본으로 하고 북부 내륙을 순환하는 열차와 황해남북도를 순환하는 열차가 있다.
▽도로〓30㎞ 이내의 근거리 수송 수단으로 철도수송의 보조 기능에 머문다. 98년말 현재 총 연장은 2만3407㎞ 정도. 고속도로와 1∼6급 도로 등 7개 등급의 도로가 있는데 1급 도로 이상은 전체의 4.2%에 불과하고 폭 2.5m 이하인 4급 도로가 79%를 차지한다. 포장률은 4% 정도. 도로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부지역에 집중돼 있다. 주요 도로는 △서해안 축을 잇는 평양∼순안, 평양∼남포, 평양∼개성, 평양∼회천노선과 △동서축을 잇는 평양∼원산노선 △동해안 축을 잇는 원산∼고성노선 등이다. 이외에 34개의 국도와 440개의 지방도로가 있다.
▽항만〓컨테이너 전용설비를 갖춘 곳은 청진항이 유일하다. 하역은 주로 인력에 의존하며 하역장비도 5∼20t급 소형 크레인이 대부분. 총 하역능력은 98년말 현재 3501만t이다. 동해안에 나진 선봉 청진 흥남 원산 등 5개 무역항과 10개 어항(漁港)이 있고 서해안에는 남포 송림 해주 등 3개의 무역항과 4개 어항이 있다.
▽에너지〓에너지 다소비 산업인 중공업 육성 전략, 사회주의권의 원유 원조 급감으로 심각한 수급난을 겪고 있다. 송배전 시설의 노후화에 따른 높은 누전율(30∼50%), 저질탄 대량 생산에 따른 낮은 열효율, 낮은 가동률 등도 전력난을 부추기는 요인. 발전량은 시간당 170억㎾(98년말 기준) 정도.
▽통신〓가장 취약한 부문. 통신장비와 시스템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 조립해서 쓰고 있으며 아날로그 방식이 주종이다. 98년말 현재 전화 회선수는 110만회선.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