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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e컬처]'북한표 인터넷'을 보셨나요?

입력 | 2000-06-11 19:38:00


‘북한표 인터넷’을 보셨나요? 북한표 인터넷 제1호는 작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창건일을 기해서 문을 연 ‘조선인포뱅크’(www.dprkorea.com) 사이트다. 이 사이트를 열면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해진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라는 노래가 전자음으로 흘러나온다.

▼'조선인포뱅크' 작년 선봬▼

다소 유치하게 디자인된 지구의를 클릭하고 사이트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조선영화’ 코너가 눈에 띈다. 여기서는 ‘꽃파는 처녀’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등의 예술영화와 ‘령리한 너구리’ ‘호동왕자와 락랑공주’ 등 북한이 자체 기술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그리고 ‘영광 빛나는 백두산 고향집’ ‘동명왕과 동명왕릉’ 등 기록영화, 즉 다큐멘터리를 설명과 함께 자료화면으로 볼 수 있다.

그 아래에는 ‘조선음악’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이미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보천보전자악단’ 음악이 제1집에서 85집까지 구비되어 있는데 이중에는 영화음악과 외국노래를 포함해 우리의 가라오케에 해당하는 ‘노래반주곡 1∼7집’ 그리고 우리식으로 하면 메들리곡인 노래련곡 ‘장군님 품속에서 10년’ 등이 실려있다.

또 ‘왕재산경음악단’ 음악이 52집까지 갖추어져있는데 주로 기악곡집과 무용 무도곡집 그리고 체조음악곡집과 민요곡집 등이고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로 유명한 ‘만수대예술단’의 음악도 44집이나 구비되어 있다.

▼회원 되려면 당국허가 필요▼

이 사이트는 공식적으로 중국 베이징에 본부를 둔 북한계 범태평양조선민족경제개발촉진협회라는 긴 이름의 조직이 만든 것으로 되어 있지만 도메인(인터넷주소) 조회 결과 등록주체가 베이징 차오양 지역 루오 싱 찬 무역회사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웹마스터(운영자) 역시 북한인이 아닌 중국인으로 밝혀졌다.

현재 북한의 공식적인 국가 도메인명은 kp지만 전세계 인터넷주소와 번호를 총괄하는 미국소재 IANA(Internet Address Numbers Authority)로부터 위임을 받아 운영하는 기관이 북한에 없어 사실상 kp도메인을 이용한 인터넷은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비록 중국측 서버를 이용한 것이긴 하지만 현재로서는 ‘조선인포뱅크’ 사이트가 북한당국을 대변하는 유일한 대외 홈페이지다.

이 사이트에는 앞서 소개한 것 이외에도 “김정일총비서 김일성종합대학에 교육설비들을 보내시였다” “꾸바대사관 성원들 모내기를 도왔다” “조중친선의 력사는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등의 선전성 기사가 눈에 띤다. 결국 이 사이트는 무늬만 인터넷 홈페이지이지 사실상 여전히 레닌이 언급한 바 있던 ‘집단적 선전자, 집단적 선동자, 집단적 조직자’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사이트를 단순열람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회원가입, 전자우편, 책과 음반 등의 주문판매를 이용할 경우에는 북한 주민접촉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 한 기업은 백과사전 편찬을 목적으로 이 사이트가 제공하는 북한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북한주민접촉 승인을 받고나서야 이 사이트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인터넷역사에 남을 진기록▼

아마도 인터넷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진기록임에 틀림없다.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마땅한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는 것이 북한주민접촉승인 사항이 되어야 한다는 현실앞에 씁쓸한 마음을 지우기 어렵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마당이지만 여전히 인터넷안의 남과 북간에는 인위적인 장애의 요소들이 버젓이 활개치고 있는 셈이다.

정진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남북정상회담을 맞아 지난회에 예고됐던 '인터넷 음식'에서 주제가 변경됐습니다. '인터넷 음식'은 다음회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