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편리인가, 상업적 전략인가.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와 문학계 메이저 출판사들이 서로 낯을 붉히고 있다. 최근 교보문고가 매장의 시집 배치를 바꾼 것이 발단이 됐다. 벽면 서가에 시집을 출판사별로 배치해오던 것에서 시인 이름순으로 재배열한 것이다. 이는 곧 창작과비평사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세계사 문학동네 등이 내는 유명 시인선 시리즈가 해체되어 진열됨을 뜻한다.
교보문고측은 “진열방식의 변화는 독자가 시집을 찾기 쉽도록 만들기 위한 조치 일 뿐 특정 출판사나 순수문학 시집을 홀대하려는 것은 아니다”면서 “일부에 잘못 알려진 것처럼 잘 안팔리는 순수시집을 변방에 배치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강조했다. ‘베스트 시집’ 등 주제별로 시집 표지를 보이게 진열한 5개의 평대 뿐 아니라 서가의 시집 진열 공간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하지만 시집 코너의 중심을 차지해온 대형 출판사들은 ‘기득권 지키기’로 비춰지지 않을까 우려하면서도 교보측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문학과지성사 관계자는 “나름의 독특한 색깔을 유지해온 출판사별 시선집을 저자의 이름순으로 무차별적으로 섞어놓는다면 독자들을 순수시로부터 더욱 멀리 떨어뜨려 놓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판사별로 중복되는 시인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저자별 배치가 얼마나 효용이 있겠느냐”는 말도 덧붙혔다.
이런 표면적인 이유외에 출판사들이 교보측에 얼굴을 붉히는 것은 심정적인 ‘섭섭함’ 탓도 적지 않아 보인다. 애시당초 상업성과 거리가 멀면서도 꾸준히 내놓고 있는 순수시집이 매장에서 그만한 대접을 못받고 있는 점 때문이다. 창작과비평사 관계자는 “순수문학 시집끼리 섞인다면 차라리 낫지만 중고생 주머니를 겨냥한 하이틴 시집류 등 수준 이하의 작품과 나란히 진열되는 것은 문학계의 자존심 문제”라고 꼬집었다.
교보문고측은 “시집을 대상으로 저자별 가나다순으로 배치한 것을 일종의 실험이었고 점차 점차 인문교양서로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험’이란 말은 곧 책 진열에 대한 고객의 반응이 나쁠 경우에는 ‘원위치’시킬 것임을 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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