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닝이… 잘 대니오먼 고향두 가 볼 수 이꺼찌(대통령이 잘 다녀오면 고향도 가 볼 수 있겠지).”
남북정상회담을 눈앞에 둔 11일 오후 군사분계선 접경 마을인 경기 파주시 교하면 상지석2리. 문밖을 나선 아흔의 서임순(徐壬順)할아버지는 바라다보던 북녘하늘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그의 고향은 행정구역상 사라져 버린 ‘경기도 장단군 반정리’. 이젠 휴전선 남쪽 민통선안 ‘지뢰’로 뒤덮인 곳이다. 비운(悲運)의 철책선 밑에 그어진 그곳은 대한민국 땅이건만 누구도 밟을 수 없는 ‘금단(禁斷)의 땅’이 돼버렸다.
6·25전쟁 직후 ‘1·4후퇴’를 맞아 “1주일 동안만 마을을 비우라”는 국군의 소개(疏開)작전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금 이곳에 자리잡아야 했던 것이 벌써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씨의 눈에는 “고향땅에 묻어달라”며 쓸쓸히 눈을 감던 부모의 한 맺힌 절규가 아직도 생생하다.
서씨처럼 장단군 일대에서 이 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긴 주민들은 400여 세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현재 80여가구만 남았다. 5분의 1로 줄어든 주민들은 행여 고향땅이 보일까봐 마을회관을 2층으로 높였다. 불과 10㎞ 앞에 두고도 못밟는 고향땅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마을회관의 이름을 ‘망향정(望鄕亭)’이라 짓기도 했다.
세월의 유속(流速)에 사람들의 마음도 깎여버린 것일까. 분단의 현장을 살아온 주민들의 생각은 가구별로 조금씩 달랐다.
여섯살 때 부모의 손을 잡고 이곳에 정착한 박여순(朴麗淳·56)씨는 무조건 고향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하는 1세대와는 다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2세대. 박씨는 “나 역시 고향에 가보고 싶다”며 “앞으로 정부는 이곳 주민들이 고향에 남겨둔 농토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고향에는 아예 무관심한 자식세대의 ‘속없는’ 마음을 두고 답답해했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10대 후반의 한 여학생은 “통일이 되고 고향 찾아가는 것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내가 원하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하루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일정이 갑작스레 하루 늦춰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들은 마을회관에 옹기종기 모여 “잘돼야 되는데”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지울 수 없는 듯했다. 1세대인 손장선(孫長先·80)할머니는 “세월이 흐르다보니 아들이나 손자손녀들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 이게 다 전쟁 때문이야. 대통령이 북한에 잘 다녀와서 하루빨리 통일이 돼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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