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진중에서 스토아철학의 주요 저작인 ‘명상록’을 썼다는 사실에 무릎을 치는 사람이라면 이제 “눈을 들어 안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규장각 관장인 서울대 국사학과 정옥자(鄭玉子·58) 교수가 정조 서거 200주년을 맞아 출간한 ‘정조의 수상록―일득록(日得錄) 연구’(일지사). 한국 역사에도 일상적인 통치자가 아니라 선비를 뛰어넘는 인문주의적 소양과 인품으로 백성과 신하를 설득한 ‘군사(君師)’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연구서다》
조선 후기 문화사, 지성사연구의 권위자인 정옥자관장은 그야말로 정조를 ‘흠모’하는 학자다. ‘일득록 연구’는 78년 ‘정조의 학예사상’이라는 논문을 시작으로 정조연구에 뛰어들었던 그가 22년에 걸친 학문적 연모 끝에 내놓은 농익은 연구서다.
―정조의 위업을 드러내기 위해 특별히 ‘일득록’을 고른 이유는?
“정조의 육성이 들리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일득록은 이름 그대로 정조가 매일 나랏일을 돌보는 사이사이 털어놓은 독서와 사색의 편린들을 신하들이 그대로 옮겨적은 것입니다. 솔직하되 하찮은 잡사(雜事)가 없어 수상록이라고 분류하기에 손색이 없죠.”
일득록은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의 일부분. 정관장의 ‘일득록연구’는 그 중 정조의 교화사상과 인문적 수준을 보여주는 훈어조(訓語條)와 문학조를 집중 탐색했다. 조선조 스물일곱명의 왕 중 180권 100책의 방대한 문집에 ‘일득록’까지 남긴 왕은 정조가 유일하다. 정관장이 초역(抄譯)한 166항목의 일득록에는 ‘독서란 많이 쌓이고 나서 조금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경구가 반짝인다.
▼변방의식 털어버린 '큰 인물'에 매료▼
―정조의 어떤 면을 특히 흠모합니까.
“그의 문화적 자부심과 탁월한 역량 모두입니다. 정조시대는 한국 역사상 보기 드물게 변방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우리가 문화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 통치자로서 정조는 나무와 숲을 다 볼 줄 아는 탁견을 지닌 뛰어난 인물이었죠.”
정관장이 정조를 바라보는 시점은 지극히 현재적이다. “정조의 시대가 21세기 한국 정체성 회복의 준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19세기말 이후 겪었던 일제 식민지배 36년, 한국전쟁, 최근의 IMF체제를 저는 조선조의 임진 병자 양대 전란에 비교해 봅니다. 당시로서는 세계대전이라 할 수 있는 참화를 겪고도 조선은 문화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 진경(眞景)시대를 열었죠.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도 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구현할까 아닐까요? 변방의식을 벗고 21세기 문화국가 건설을 얘기하려면 저는 그 비전을 ‘18세기의 자부심’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여자 관장' 맡아▼
역사의 가정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정조가 살아 돌아와서 자신이 애지중지한 규장각을 1m60이 채 안되는 자그마한 여성학자가 꾸려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정관장은 이 질문에 웃음을 터뜨렸다.
―규장각 관장을 맡으신 감회가 남다르셨을 텐데….
“사실 단숨에 관장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도 후보로 추천됐지만 ‘여자 장관은 봐도 여자 대제학은 못 보겠다’는 반대의견이 있어 밀려났다고 하더군요. 그럭저럭 무리없이 1년을 넘겨 시험기간은 통과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관장은 ‘일득록연구’에 만족하지 못한다. 인간 정조의 생애를 치밀히 복구한 ‘정조(正祖)’라는 제목의 책 한권을 기필코 펴낼 계획이다. 오직 걱정되는 것은 정조가 자주 탄식했듯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이 멀다(日暮途遠)’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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