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대통령 부인인 에바 페론은 51년 11월 자궁절제수술을 받을 때 자신의 남편이 맨해튼에서 의사를 초청해 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에바의 남편 후안 페론이 초청한 의사 조지 팩은 에바가 이미 마취된 후 수술실에 들어와 그녀가 깨어나기 전에 수술실을 떠났다. 그보다 한달 전에도 팩 박사는 똑같이 비밀스러운 과정을 통해 마취가 돼 있는 에바를 진찰해서 이미 아르헨티나 의사들이 발견했던 것과 같이 에바가 자궁경부암에 걸렸음을 확인했다.
에바의 진찰과 수술이 이처럼 비밀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후안 페론의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그녀의 병을 그녀와 국민들에게 숨기기 위해서였다. 에바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벌여 국민으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생명을 위협하는 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선거결과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아이를 낳은 적이 없는 에바는 자신이 여성들만의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을 막연하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진찰과 수술을 받았다.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아르헨티나 정부는 에바의 병에 대해 밝히기를 거부했다. 언론은 에바가 암에 걸린 것인지 아닌지를 놓고 엇갈린 보도를 했으며 페론 대통령은 에바가 수술 후 회복 중일때 대통령에 재선됐다. 그리고 얼마 후 에바는 제한적인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52년 2월에 복통이 다시 시작됐고 아르헨티나 의사들은 암이 재발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때에도 의사들은 에바에게 병명을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에바는 자신이 자궁경부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같은 해 7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과거에 의사들은 암을 비롯한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병명을 알려주는 경우가 드물었다. 지금도 일부 국가에서는 환자에게 병명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 관행으로 돼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진단 결과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누가 수술을 집도하게 될 것인지도 미리 밝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한 정치가들을 포함한 유명인사들도 자신이 암에 걸렸을 경우 이를 공개적으로 시인한다. 지난 4월 자신이 초기 전립선암에 걸렸다고 밝힌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좋은 예다.
그러나 유명인사들의 치명적인 질병을 다루는 의사들은 종종 대단히 곤혹스럽다고 말한다. VIP의 개인적인 명성 때문에, 또는 환자의 요구때문에 일반적인 치료와는 다른 치료를 하는 예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의학계에서는 이를 VIP신드롬이라 말한다.
물론 자신의 질병을 솔직하게 밝히지 않는 정치가도 있다. 92년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폴 송거스 의원은 골수이식 수술을 받은 후 임파종이 재발했을 때 자신의 병이 “암이 아니다”라는 막연한 발표만을 내놓았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역시 자신이 전립선암에 걸렸음을 숨기고 있었다. 그를 담당했던 의사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병명을 밝히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유명인사들이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때에는 소위 ‘VIP 신드롬’이라는 것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때문이다. 의사가 개인적인 명성 때문에, 또는 환자의 요구 때문에 일반적인 치료와는 다른 치료를 하는 것이 적지 않다는 것.
러너 박사는 에바 페론의 경우 “의사들이 영웅적인 치료법을 시도해서 그녀의 생명을 연장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으나 팩 박사는 그녀를 VIP로 보지 않았다”며 “그녀의 암이 재발했을 때 팩 박사는 수술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고 다시 수술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library/national/science/health/060600hth-doctor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