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정상회담의 화제는 단연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변신’이다. 은둔자요 베일에 가려진 통치자로 알려졌던 그는 활달한 모습에 거침없는 언변으로 자신에 대한 서방의 고정관념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그의 이같은 변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본의 김정일 전문가 두 사람의 얘기를 들어본다.
▽스즈키 노리유키(鈴木典幸) 라디오 프레스(RP)이사〓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김위원장이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회담에는 직접 나가겠다는 방침을 세운 때문이다. 중국 방문에서 이를 증명했다. 김위원장은 중국 방문을 통해 김대중대통령을 맞는 연습을 했다.
둘째는 국내의 권력 기반이 안정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고 셋째는 한국으로부터 경제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한국에서 먼저 손을 뻗었다는 점에서 더욱 부담이 적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공개 장소에 나섬으로써 그동안 북한 주민들을 통제하는데 써온 신비감이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김대통령을 불러들여 1대1로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권위를 유지하는데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오히려 북한 주민들에게 좀더 친근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득이 있다. 또 고 김일성(金日成)주석이 못다 이룬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 그가 충실하게 유훈 통치를 실행하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준 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요시다 야스히코(吉田康彦) 사이타마대학 교수〓그동안 부친인 김일성주석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한데 비해 자신은 약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김일성주석 사망후 자신에 대한 인민의 존경심이 높아지고 군부 지지가 강력해지길 기다려 왔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주석 사망후 수해 등 자연재해가 잇따라 발생하고 식량 위기가 심각해지는 등 국내 문제가 산적해 대외적으로 활동할 여유가 없었다. 군부 반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1년에 100회 정도씩 군대를 방문해 격려하면서 자신의 지배 체제를 강화해 왔다. 이번에 김위원장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런 면에서 북한 인민이 모두 자신을 존경하고 신뢰하고 지지한다는 데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정권 기반이 공고해졌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린 것이다. 또
그동안 김위원장은 국제사회에서 위험한 존재로 신뢰를 받지 못해 왔다. 그러나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자신이 신뢰받지 못하면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됐다. 이 두 가지 이유(국제 체제의 공고화와 국제 신뢰 확보의 필요성)로 김위원장은 멋지고 당당하게 농담을 해가면서 전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