冷戰이 한창일 때 동서 양 진영은 군비경쟁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은 攻擊(공격)용 무기와 防禦(방어)용 무기의 구분이 曖昧(애매)한 시대가 되었지만 옛날에는 그 구별이 분명했다. 당시 대표적인 공격용 무기는 활과 창이었으며 방어용으로는 방패(干)나 성(城)이 있었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개인의 목숨을 보호해 주는 것이 방패라면 나라를 지켜주는 것은 城이다. 그래서 干城(간성)이라면 개인의 생명과 나라를 지켜주는 ‘군인’을 뜻하게 됐다. 한편 똑같이 ‘방패’를 나타내는 ‘盾(순)’은 干보다 훨씬 발달한 형태다. 그러니까 개량된 방패라고 하겠다. 창과 방패를 합쳐 干戈(간과)라고 하는데 ‘戰爭’을 뜻했다.
예나 지금이나 남을 방문할 때는 빈손으로 가지 않고 예의상 일정한 예물을 지니고 가는 것이 상례였다. 執贄(집지·執摯)라고 하는데 玉帛은 玉과 비단으로 옛날 나라와 나라 사이에 會盟(회맹·제후들이 모여 맹세함)할 때 지녔던 禮物이다.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예물을 준비했는데 대체로 諸侯의 경우에는 玉을, 그 후계자라면 帛을 지녔다. 이 때문에 지금은 平和의 상징으로 비둘기를 꼽지만 옛날에는 玉帛이 그것을 상징했다. 중국 역사에서 干戈와 玉帛을 교환했던 예는 수없이 많았다. 干戈玉帛은 ‘化干戈爲玉帛(전쟁상태를 평화상태로 만듦)’의 준말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민족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일대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긴장을 완화시켜 평화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커다란 수확이 아닐까.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