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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기자의 시네닷컴]국내극장 개봉 1호 '불가사리'

입력 | 2000-06-16 11:57:00


이변이 없는 한, 국내 극장에서 개봉하는 북한영화 1호가 될 '불가사리’를 며칠전 비디오로 볼 기회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미있다. 비디오 테이프를 구하려 수소문하던 내게 '불가사리’를 이미 봤다는 한 영화 관계자는 "촌스럽다”며 볼 필요 없다고 했지만, 오히려 '촌스러워’서 재미있다. 요즘처럼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거대하고 날렵한 괴물들이 스크린에서 날뛰는 디지털 시대에, 배우가 괴물 복장을 입고 직접 불가사리를 연기한 아날로그형 대작 영화 '불가사리’는 인간적인 정감마저 느끼게 한다. ‘불가사리’가 1998년 일본에서 개봉됐을 때 할리우드 첨단 기술로 만든 ‘고질라’와 맞붙어 만만치 않은 흥행성적을 거둔 이유도 그처럼 따스한 인간미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98년 日서 '고질라'와 흥행대결▼

배우들의 말투가 1960년대의 문예영화를 연상시키고, 과장된 연기가 간혹 거슬려도 ‘불가사리’의 투박한 매력이 그런 걸 상쇄해준다. 불가사리가 입안에 들어온 대포알을 그대로 내뱉어 적진에 되돌려줄 때 ‘피용∼’하는 효과음엔 웃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도 ‘북한영화라서 선동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깬다. ‘불가사리’는 농민들을 도와 폭정을 끝장낸 영웅이지만 쇠붙이를 먹어치우는 왕성한 식욕 때문에 이번엔 애물덩어리가 된다. ‘페이스 오프’처럼 선과 악의 양면을 지닌 불가사리를 없애기 위해 여주인공이 자신을 희생하는 마지막 장면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이 정도면 정통 괴수영화의 걸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아날로그형 괴물에 인간미 넘쳐▼

‘불가사리’는 이해하려는 ‘의지’없이도 공감할 수 있는 북한영화다. 남북 분단의 둑을 허무는 데에 문화교류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문화교류는 억지로는 안되는 일이다. ‘평양교예단’의 재주를 ‘의무’가 아니라 ‘마음’으로 즐겼듯, 일본 괴수영화 ‘고질라’가 미국에 컬트 팬들을 거느린 것처럼 국내에 ‘불가사리’에 진심으로 즐거워 하는 컬트 팬들이 생겨나게 된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극장에서 보는 북한영화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면, 그런 게 바로 문화교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