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는 수억, 많게는 수십억원씩을 쏟아부어 어렵게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일반인에게 공짜로 제공한다. 굴뚝산업에서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런 공짜 공세는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국내 대표적인 번역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언어공학연구소는 최근 한 번의 클릭으로 인터넷 외국어 사이트를 우리말로 바꿀수 있는 프로그램인 ‘월드맨’을 개발했다. 개발비만 무려 15억원, 3년여의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한 회심작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고심 끝에 이 값비싼 프로그램을 공짜로 보급하기로 했다. 사용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홈페이지에 들어와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한 것. 무료 공개 첫날인 지난달 23일에는 홈페이지 접속 건수가 무려 150만건에 달해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이 회사가 공짜 결정을 내린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불법 복제. 아무리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도 워낙 불법 복제가 심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판매만으로는 돈이 안된다는 것. 차라리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 인지도를 높인 뒤 다른 상품을 파는 우회전략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이 회사는 조만간 별도의 검색사이트를 열 계획이다. 월드맨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12억원이었던 매출을 올해는 50억원으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케이아이티에프는 지난달 18일 중소기업들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리눅스 기반의 인트라넷 솔루션인 ‘스몰컴퍼니’를 개발해 선보였다. 개발비용만 1억원 가까이 들어간 제품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 역시 홈페이지(www.kitf.co.kr)에 소스 코드를 공개, 누구나 필요한 기업이라면 공짜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손석복사장은 “현재 시중에 팔리고 있는 비슷한 제품들이 1000만원 정도이기 때문에 적어도 500만원 정도에는 팔 수 있었다”며 “그러나 공짜로 배포해 회사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예상한대로 벌써부터 공짜 배포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홈페이지 접속건수가 하루 1만2000건에 달하고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한 기업만 2300곳에 달한다. 케이아이티에프는 이 중 많은 기업이 유료로 제공될 응용프로그램을 주문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넓어진 국내 지명도를 최대한 활용, 중국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이밖에 새롬데이터맨 등 공개자료실에 올라있는 수많은 소프트웨어가 모두 공짜 프로그램의 대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약 한 달 정도 기간을 정한 한정판이나 맛보기판만 제공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요즘은 통째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불법 복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만 있을 수 있는 독특한 마케팅전략”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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