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관은 때로 정부기관 등 뉴스 공급처의 엠바고(Embargo·보도시간 제한)요청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는 국익이나 인권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을 때에 국한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적어도 정부의 ‘입맛’에 맞춰 남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한국통신의 한솔엠닷컴 인수와 차세대이동통신(IMT 2000)정책방안(초안) 발표 과정을 보면 정부가 이 같은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안병엽(安炳燁)정보통신부장관은 9일 “한국통신이 한솔엠닷컴을 인수하겠다고 보고해 왔으며 민영화계획 보완을 전제조건으로 허용하겠다”고 밝힌 뒤 엠바고를 요청했다.
보도해도 괜찮다는 엠바고 해제는 몇 차례 지연되다 15일에야 이뤄졌다.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 위원들과 연락이 되지 않아서”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안장관의 입장 표명 이후 언론보도 때까지 6일간 간과할 수 없는 ‘정보의 불균형’이 발생했고 그 피해자는 소액투자자들이었다. 엠바고 요청이 있기 며칠 전부터 증권가엔 이미 소문이 퍼져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한솔엠닷컴 주식을 사들였다. 까맣게 모르고 있던 개미투자자들은 보도가 된 뒤에야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IMT 2000 정책방안 역시 마찬가지. 정보통신부는 7일 엠바고를 전제로 기자들에게 자료를 나눠줬다. 정통부가 요청한 보도시점은 무려 일주일 뒤인 14일. 이 자료는 13일 열릴 공청회에 배포될 자료였다. 공청회는 말 그대로 공공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정책이나 결정에 반영하는 자리. 따라서 공청회 자료를 미공개로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가 같은 뉴스를 동시에 접하는 ‘지구촌’ 세상이 됐다. 더구나 최첨단을 달린다는 정보기술(IT) 정책과 산업을 담당하는 부처가 구시대에나 어울림직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영태ebizwi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