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우연한 기회에 프로게이머가 된 박승인씨(21·한글과컴퓨터 ‘예카’팀). 요즘 하루가 정말 바쁘다. 낮에는 각종 게임대회에 참가하고 밤에는 전세계의 게이머들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다. 당연히 휴일도 거의 없다. “몸이 두 개가 아니라 열 개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심정이다.
처음부터 프로게이머가 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분당정보산업고를 졸업한 후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와 들른 PC방에서 게임의 마력에 빠져들게 됐다.
순발력과 전략을 함께 요구하는 스타크래프트에 매력을 느껴 거의 중독상태가 됐다. 이후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하루에 50∼60게임을 하며 게임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점점 배틀넷에서 이름이 알려졌고 어느새 프로게이머가 되어 있었다.
프로게이머로서의 첫 출발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배틀탑 대회에서 입상을 하면서 부터였다. 게임 입문 1년도 채 안되어 프로가 된 것이다.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임대회가 점점 많아지고 인터넷사업이 앞으로 유망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프로게이머의 길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프로게이머 생활이 아주 만족스럽다고 한다. 물론 밤을 새워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몸이 피곤하기는 하다. 외국 고수들과는 밤시간이 아니면 대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자로서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때도 많다. 하지만 입상 횟수가 늘어나면서 상금을 많이 받는다고 자랑이다.
“같은 나이 또래에서 저만큼 돈버는 사람이 없을걸요”라며 씩 웃는 모습에서 솔직함과 엉뚱함이 엿보인다.
박승인은 한글과컴퓨터 예카팀에서 첫 월급을 타자마자 요즘 유행하는 ‘씽씽카’를 샀다고 한다. “정확히 얼마나 버느냐”는 질문에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야무지고 똑부러져 보이는 그는 요즘 한글과컴퓨터 예카팀의 ‘신화’가 되고 있다. 처음 출전한 KIGL에서 10전 9승 1패, 승률 90%라는 성적으로 여성게이머 랭킹 1위를 당당히 확보하면서 한글과컴퓨터 예카팀의 랭킹을 선두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지고는 못배기는 성격인데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오늘의 프로게이머 박승인을 있게 한 비결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교시절에는 춤에 빠져 가수 박진영와 업타운의 백댄서를 하기도 했다. 최근 KIGL 7차전까지 무패 행진을 했던 것은 운보다는 ‘악바리 근성’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꿈이 뭐냐고 묻자 “게임시나리오를 쓰고 싶다”고 한다. 앞으론 남이 만들어 놓은 게임보다는 자기가 만든 게임을 하고 싶단다. 일단은 KIGL을 제패하는 것이 목표라는 박승인. 야무진 눈빛으로 다부지게 대답하는 그는 25일 KIGL 결승을 위해 연습중이다.
신일섭sis0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