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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 경제학]인간은 받은 만큼 줄줄도 아는 존재

입력 | 2000-06-19 19:12:00


한 어촌을 예로 들어보자. 모든 사람들이 최대한의 이득을 얻고자 물고기를 잡는다고 치자. 이 경우 물고기는 곧 고갈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협조해서 어획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협조해 규제에 따를 때 어떤 한사람만은 맘껏 고기를 잡음으로써 훨씬 더 큰 이득을 얻는다.

이것이 경제학자들을 괴롭혀온 무임승차자의 문제다. 이에 대한 해결방법으로 지금껏 경제학에서는 국가가 개입하여 어획량을 규제해야 한다는 견해와 인근 해안에 사적소유권을 한 사람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돼 왔다. 여기서 행위대응적 인간의 존재는 이러한 문제를 둘러싼 ‘시장이냐 국가냐’라는 논쟁에 대해 제3의 길을 해결책으로 제시해준다.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행위대응적 인간(Homo Reciprocan)이라는 개념이란 무엇인가. 신고전파 경제학의 중심범주인 이기적 경제인의 대응개념이다. 이기적 경제인은 완전한 정보와 무한한 계산능력을 갖고 주어진 제약 하에서 자신에게 가장 큰 보수(또는 이익)를 주는 행동을 선택한다는 의미에서 ‘보수대응적’이다.

반면 ‘행위대응적’ 인간이란 상대방의 선의에 대해서는 선으로 대응하고 상대방의 악의에 대해서는 보복으로 대응하는 인간유형을 말한다. 행위대응적 인간은 무한한 계산능력이나 미래에 대한 완전한 정보 대신 단지 과거에 상대방이 자신들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만을 기억하고 그에 입각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전략에 입각해 행동하는 경제주체다.

행위대응적 인간의 존재가 경제학에서 중요해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협조적 행동이나 이타적 행동 등은 이기적 경제인을 기초로하는 경제학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이었다.

그러나 행위대응적 인간의 존재는 위에서 본 협조적 행동들이 한 사회에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설명해 주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행위대응적 인간은 협조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협력으로써 대응하고,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징벌하려는 성향을 가짐으로써 사회내에서 사회적 규범의 강제자로서 역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위대응적 인간이 높은 인구비중을 차지하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협력적인 태도를 나타내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회에 비해 더 빠르게 번영할 수 있게 된다.

행위대응적 인간이 한 사회에서 다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를 살펴보자. 진화적 게임이론에 의하면 행위대응적 전략(혹은 문화적 특성)은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교육이나 모방을 통해 습득된다. 그리고 경제주체들이 그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남들보다 우월한 보수를 얻는 경우에만 그 전략은 사회 내에서 확산되며 그렇지 못한 경우 소멸된다고 가정된다.

문제는 행위대응적 인간이 1대1 거래에서 이기적 경제인에 비해 취약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일단 협조하려 하지만, 후자는 상대방이 협조한다는 전제 하에 협조로부터 이탈함으로써 보다 높은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한 사회는 이기적 경제인들로 가득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위대응적 인간의 존재 및 확산에는 그들이 이기적 경제인들보다 높은 보수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여러 차원의 제도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문화적 특성을 가진 경제주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나 상대방의 유형을 사전에 판별함으로써 이기적 경제인과의 거래를 회피할 수 있는 가능성(평판이나 상대방에 대한 사전조사) 등은 행위대응적 인간이 이기적 경제인들보다 높은 보수를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요인이다.

나아가 문화적 전수과정을 지배하는 교육제도 등도 행위대응적 전략이 한 사회에서 우위를 차지하도록 도와주는 제도적 요인이 된다. 어떤 문화적 특성이 한 사회에서 일단 지배적이 되면 그 문화적 특성을 따르는 사람들이 교육제도 등을 독점함으로써 자신들의 문화적 특성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는 어떤 문화적 특성이 다양한 제도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떻게 한 사회 내에서 재생산되는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여기에는 경제학 뿐만 아니라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그리고 심리학에서의 연구성과들이 성공적으로 결합되고 있다.

최정규(미국 매서추세츠주립대 겨제학과 박사과정)jungk@econs.umass.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