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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올여름 섬뜩한 '공룡주의보'

입력 | 2000-06-19 19:40:00


매년 이맘 때 장편 애니메이션 블록버스터를 선보인 월트 디즈니가 올해는 ‘디지털 공룡’을 들고 나왔다. 7월 15일 개봉 예정인 3D 애니메이션 ‘다이노소어’(Dinosaur).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디즈니 디지털 스튜디오에서 미리 본 ‘다이노소어’는 ‘라이언 킹’ ‘뮬란’ ‘타잔’ 등으로 이어져 온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박스오피스에서 검증된 전작(前作)들의 핵심 스토리 라인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줄거리는 90년대 중반 이후 제작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모듬판’이다.

주인공 공룡 ‘알라다’가 부화 직전 알 속에서 육식공룡의 침략을 받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여우원숭이들의 서식지에 떨어져 이들 손에 길러지는 것(‘타잔’)을 시작으로 익숙한 이야기의 연속이다. 지구에 거대한 유성이 충돌한 후 일부 살아남은 여우원숭이들과 다른 공룡 떼를 만나 물이 있는 곳으로 대장정을 떠나는(‘출애굽기’) ‘알라다’. 결국 포악한 리더인 ‘크론’과 번번히 충돌하는 그는 제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며(‘뮬란’) 나머지 공룡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라이언 킹’) 파라다이스를 찾게 된다.

이렇게 ‘허약한’ 내러티브 대신 제작진은 제작 기간(5년) 내내 공룡의 ‘디지털 환생’에 주력했다. 이전 디즈니 셀 애니메이션이 캐릭터의 역동적인 동선(動線)으로 스케일의 미학에 주력한 반면, CD롬 7만장 분량의 파일을 썼다는 ‘다이노소어’는 섬뜩할 정도로 디테일한 캐릭터의 ‘표정 연기’에 집중했다.

주인공 ‘알라다’의 표정은 원시적인 희노애락을 뛰어넘는다. 말 근육 움직임을 차용해 CG로 만든 ‘알라다’는 토라지면 입술을 삐죽 내밀고 화나면 눈썹을 실룩거린다. ‘알라다’의 부인이 되는 여자 공룡 ‘니이라’는 공룡판 오드리햅번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것이 제작자 팸 마스덴의 설명이다.

포유류인 여우원숭이에는 마리 당 일렬번호가 매겨진 무려 110만여개의 ‘디지털 털’을 심었다. 감독 랄프 존닥은 “하도 털이 많이 박혀 ‘침맞은(acupunctured) 원숭이’로 불렀다”며 “51009번째 털을 눕히려면 빗 모양의 커서로 ‘빗으면’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바람불 때 휘날리고, 물에 젖으면 축 처지는 털의 움직임은 징그럽게 사실적이다.

배경은 대부분 실사를 사용해 디지털 캐릭터의 사실감을 극대화하면서도 캐릭터의 움직임에 따라 CG로 조율했다. 도입부에서 부화 직전의 ‘알라다’가 여우원숭이의 섬에 떨어지는 장면은 플로리다의 늪지에서 시작, 베네수엘라의 덤불, 호주의 해안가를 거쳐 로스앤젤레스의 한 수목원에서 찍은 실사를 CG로 이어붙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내러티브를 악세서리 취급한 채 디즈니라는 ‘그릇’에 담긴 82분 간의 ‘디지털 쇼크’는 곱씹어 볼 감동보다는 ‘순간의 전율’에 무게중심이 쏠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사회장에서 기자 옆에 있던 중년의 한 노르웨이 여기자는 “애들 손잡고 보러가야할 지는 좀 생각해 봐야겠다”고 했다.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