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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충무로]강우석/헝그리정신 잊었는가?

입력 | 2000-06-19 19:40:00


얼마전 조감독 시절 즐겨찾던 충무로 인현시장 순대국집을 찾았다.

‘주유소 습격사건’을 만든 김상진 감독 등 후배들과 함께 기억을 더듬어 찾은 그 곳은 주인만 바뀌었을 뿐 세월을 잊은 듯했다. 허름한 탁자와 의자, 추억이 쌓인 정감어린 소품들…. 순대값이 1000원에서 3000원으로 오른 것, 그리고 공짜 술국이 유료로 바뀐 것 외에는 변하지 않은 가게 분위기와 느낌이 나를 편안케 했다.

요즘의 내가 ‘있어’ 보여서일까? 후배들이 이런 곳에 왜 왔냐고 한다. “그냥 그 때가 그리워서”라는 감성적 발언으로 얼버무렸지만 영화 비즈니스에 진절머리가 난 나는, 학생시절로 돌아간 듯한 그 자리가 마냥 흐뭇하기만 했다.

자본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의 나. 헝그리 정신이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그 어렵고 추운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다. 버스값이 없어 3시간을 걸어 귀가했고, 새우깡으로 소주 5병을 마시며 열정과 울분을 토하던 일이 일상이던 그 시절. 그래도 오로지 영화에의 열정과 의지, 헝그리 정신이 나의 버팀목이 되어 그나마 지금의 내가 영화를 업으로 하게 되었다면 후배들은 고리타분하다며 웃겠지.

난 요즘 흥행의 맛을 한 두 번 본, 신인 감독들의 눈빛에서 신념이나 의지를 볼 수 없다. 그들은 작품보다 제작비에, 관객의 숫자에 더 민감하다. 영화투자자로서 기분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 못내 아쉽고 답답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사실 이런 정신을 갖고 있는 감독들에게서 나오는 정답을 나는 너무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겸손한 제작자, 오로지 영화를 잘 만들어보겠다는 감독의 자세가 합쳐져야만 소위 ‘대박’이라는 결과물이 나온다. 이정도 배우, 감독이니까 당연히 흥행이 될 것이라는 영화들이 나의 기대를 채워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만심에 관객을 우습게 보는 감독 및 제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영화 자본이 아니라 헝그리 정신일 뿐이다.4,5년동안 수십편을 제작,투자하면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려본다. 영화의 성공,실패는 제작자와 감독의 눈빛에서 이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송능한 감독이 ‘넘버3’에서 말한 불사파 송강호의 헝그리 정신은 단지 관객의 웃음보만을 노린 것이었을까?

강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