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체’, ‘르네상스’, ‘필하모니’…. 서울 사는 장년층에게는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르는, 1960,70년대를 풍미한 음악감상실의 이름들이다. 집집마다 성능좋은 오디오를 갖추고 있는 오늘날,음악감상실의 효용도 수명을 다한 걸까.
서울 봉천동 ‘신포니아’의 주인 이경의씨(57)의 생각은 다르다.
“여럿이 함께 듣고 느낌을 나누어 보세요. 혼자 들을 때와는 그 감동이 다릅니다.” 98년 12월 문을 연 뒤 1년7개월째 감상실을 지키고 있는 그의 음악감상실 예찬론이다.
처음 문을 열 때의 ‘취지’는 단순했다. “하던 사업의 수요가 줄어 일을 그만두게 됐죠.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할 일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머리에 떠오른 것이 젊은 날 즐겨 시간을 보냈던 음악감상실이었다. 15평 남짓, 크지는 않지만 벽면의 마직(麻織) 흡음재와 나무요철 벽면의 음향판은 프로의 솜씨를 느끼게 한다. “설계요? 제가 대충 책보고 생각해 의뢰한 거죠. 다행히 소리는 좋다고들 해요.”
광고전단 한 장 만들지 않았기에 처음엔 기웃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알음알음으로 한 두 사람씩 모여들기 시작해 이제는 쓸쓸치 않을 정도로 사람이 든다. 수요 교향악의 밤, 금요 영상 오페라극장 등 화면을 곁들인 정기감상회는 제법 성황을 이룬다. 토요일이면 넷츠고 천리안 등의 통신 음악동아리가 모임을 갖는다.
최근엔 ‘전속 실내악단’도 생겼다. 단골 중 바이올린 플루트 피아노 첼로 등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의기투합, 실내악단을 결성한 것. 매주 화요일 모여 연습을 한다. 지금은 손발을 맞추는 것이 급선무지만 올해 안에 사회복지시설을 돌며 아름다운 화음을 전하는 ‘음악 전도사’로 데뷔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최근에는 별난 손님들도 자주 눈에 뜨인다. 바로 인근에 사는 비전향 장기수들. “별로 갈 곳도 없고 심심할 것 같더라구요. 만남의 장소로 삼아달라고 초대했죠.” 처음엔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망설였다. 생각 끝에 박동진 명창이 부르는 ‘춘향가’를 영상과 함께 틀고, 합창음악도 들려줬다. ‘할아버지’들은 뜻밖에 손장단을 맞추며 너무도 즐거워했다. 장기수 노인들이 요즘은 “고향에 갈 수 있게 됐다”며 들떠 있다고 이씨는 전했다.
수지는 맞출 수 있을까? “잘 안될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세를 낼 때 보증금을 많이 내고 월세는 최소로 줄였지요. 하지만 매월 30∼40만원 정도는 적자에요.” 그래도 그는 태평한 모습이다. “이 나이에 친구들 만나 한잔 하는 걸로 소일해도 그정도 용돈은 들죠.”
‘신포니아’ 는 21세기 감상실답게 알찬 홈페이지도 갖고 있다. 단골인 인터넷 전문가가 아무런 댓가 없이 제작했다는 설명. www.sinfon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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