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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백두산 트레킹/들꽃天地 걸어서 天池까지

입력 | 2000-06-21 19:17:00


《날개하늘나리 두메자운 노란만병초 하늘매발톱 산미나리아재비 구름국화 바이칼꿩의다리 산꿩의다리 박새 개불알꽃 원추리 왕자붓꽃 개감채 박새 애기금매화 개감채…. 어느 시인의 시어보다도 아름다운 우리 들꽃의 정다운 이름들. 이제 일주일후면 이름 보다 더 예쁜 이 꽃들로 백두산 천지의 천문봉 아래 산등성은 꽃대궐을 이룬다. 들꽃 핀 백두산 트레킹을 안내한다.》

해발 2600m. 백두산 천지가 내려다 보이는 서쪽 청석봉 아래 능선이다. 장군봉(2750m) 등 백두산 천지를 둘러싼 16연봉의 절반 이상이 호수와 함께 180도 파노라마뷰로 똑똑히 보인다. 여기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 1m 높이 사각화강암기둥의 국경표석에는 앞뒷면에 빨간 글씨로 ‘中國’, 파란글씨로 ‘조선’이라고 쓰여 있다. 아래 바닥에 놓인 녹슨 굵은 철사 한가닥이 한 산을 두 이름(장백산, 백두산)으로 달리 부르게 한 조중(朝中)국경선이다. 한걸음만 옮겨 놓으면 바로 북한땅을 밟을 수 있다.

서울은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염천이지만 천지 아래 백두산 고산지대(해발 1000m 이상)는 봄과 여름이 반쯤 섞인 듯한 쾌적한 날씨였다. 천지 주변 산기슭에는 군데군데 잔설이 성성하고 호수 한가운데는 채 녹지 않은 유빙이 떠 있었다.

봄은 꽃의 계절. 이제 막 봄을 맞은 백두산의 청석봉 아래 고산지대(해발 1000m 이상 고지)에는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진다. 찬치퍼고개 노호배능선 고산화원 소천지와 금강폭포 가는 길은 각양각색의 들꽃으로 꽃동산을 이룬다. 수줍은 듯 다소곳이 고개숙인 진분홍 털개불알꽃, 군락을 이루며 밭을 이룬 노란 애기금매화와 산미나리아재비, 연분홍의 구름국화 군락과 하얀 박새군락 등등…. 들꽃천지를 이룬 백두산 기슭은 거대한 화원 같았다. 하루 종일 걸어도 힘들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여리고 소박한 ‘백두산 들꽃님’ 덕분이다.

꽃이 피면 벌 나비가 모이는 게 이치. 그러나 여기서만은 달랐다. 개미와 능애(파리) 모기가 꽃가루수정을 돕는다. 봄 여름 가을이 6월 중순∼9월 중순의 석달에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이곳. 세 계절이 두서 없이 한데 뒤섞이다보니 백화난만(百花爛漫)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 다양한 들꽃이 쉼없이 피고 진다. 단 석달새에 씨앗을 뿌리고 장장 9개월이나 지속되는 긴 겨울준비를 하자면 식물 곤충 모두가 바쁘지 않을 수 없다. 개미와 파리 모기가 나비와 벌을 대신하는 자연의 이치는 이리도 묘하다.

그 꽃 중에서도 가장 기특한 놈은 천지가의 노란 만병초다. 잔설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강인한 꽃나무지만 슈크림빛깔의 노란 꽃은 귀부인처럼 고아하다. 행여 시도 때도 없이 불어 닥치는 천지의 일진광풍에 날릴까 카펫처럼 깔린 관목의 틈새에서 바짝 몸을 낮춘 채 여린 꽃잎을 꼭 붙들고 있는 모습은 안쓰럽다기보다는 차라리 감동을 준다.

천지주변에서 만나는 자주빛 두메자운도, 하이얀 담자리꽃나무와 개감채도 애처롭기는 마찬가지다. 이즈음 천지에 오르는 기쁨은 그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늠름하게 예쁜 꽃을 피운 당당한 백두의 들꽃을 만나는데 있지 않을까.

백두산 고산지대에서도 나무의 생장한계선(해발 1700m) 너머의 고산식물은 거개가 잔디처럼 서로 엉겨 붙어 뿌리를 내리는 키작은 관목(키 25㎝이하의 나무). 매년 7월 백두산 서쪽산문을 통해 천지까지 오르는 ‘걸어서 천지까지’ 트레킹 코스는 온갖 들꽃으로 뒤덮인 이 관목지대를 통과한다. 꽃을 밟을까봐 조심조심 딛는 발바닥으로 두툼한 카펫을 밟는 듯한 푹신한 느낌이 기분 좋게 전해온다.

7월 백두산의 매력은 끝이 없다. 눈녹은 천지와 장대한 16연봉의 기막힌 조화도 특별하지만 천지트레킹 도중 경험하는 자태 고운 우리 들꽃과의 만남도 훌륭하다. 수목생장선의 첨단에서 원시림의 진수를 보여주는 울창한 사스레나무숲, 백두산의 또 다른 운치를 느끼게 하는 금강폭포와 기묘한 형상의 금강대협곡, 들꽃 만발하는 소천지도 천지 못지 않은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들꽃 만발한 백두산은 천지만 보아온 우리에게 또 다른 자랑거리로 등장한다.

▼천지~서쪽산문 트레킹 코스 원시림-들꽃… 자연 그대로▼

백두산 천지 서쪽 청석봉 아래 고산지대는 7월초에 ‘들꽃 천국’이 된다. 천지부터 해발 1500m의 서쪽산문까지 산기슭은 완만한 구릉. 여기에 자생하는 원시림과 관목, 들꽃군락지는 지금까지 인간간섭이 없어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콘크리트포장길로 오르는 북쪽 천문봉 지역과는 판이하다. 서쪽지역을 관리하는 중국길림성장백산국가급자연보호구 서파(西坡)여유국이 이곳을 세계적인 이코투어리즘(eco-tourism·생태관광)지역으로 보호하려는 것도 그 때문. 현재 서쪽산문안에는 천지 아래 2300m까지 오르는 임도와 산문부근의 산장 한 채, 캠프장 한 곳 뿐이다.

이 서쪽 고산지대에서 생태관광이 시작된 것은 98년. ‘걸어서 천지까지’라는 들꽃트레킹 코스가 개발됐고 이때부터 6∼8월에 한정된 인원(100명 정도)이 서파여유국의 허가 아래 생태탐사를 다녀왔다. 서파여유국과 한국백산기획(대표 최희주)은 최근 생태탐사 및 여행을 위한 상품개발 및 합작에 합의했다. 올 백두산 고산지대 트레킹은 한국백산기획과 고어텍스아웃도어클럽, 우진여행사가 기획한 단체여행상품으로 다녀올 수 있다.

▽여행상품

코스는 서울∼장춘(혹은 심양)∼통화∼송강하∼서쪽산문∼북쪽산문∼용정∼일송정∼연길∼장춘∼서울

▼백두산 트레킹 패키지 상품▼상품이름출발일정가격(원)주관사전화(02)들꽃탐사6월30일6박7일118만우진관광
백산기획725-27447월8일5박6일108만천지트레킹7월13일5박6일108만고어텍스782-04584박5일98만우진관광
백산기획725-2744천지서북연봉
횡단트레킹8월11일5박6일112만8월16일

▼日교포가 세운 장백산호텔▼

‘반갑습네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뜬’ 이 노래. 올여름에는 평양아가씨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자.

백두산의 북쪽산문안 ‘장백산국제관광호텔’(중국 길림성 안도현 이도백하진·중일합작). 이 호텔 ‘미인송 미니바’에 가면 평양에서 온 한 미인을 만날 수 있다. 이름은 ‘김금란’, 직책은 이 호텔교육담당과장. 98년 5월 개관때 평양에서 건너온 직원인데 노래솜씨가 수준급이다. 식당주임에서 올해 과장으로 승진 했지만 저녁에 바에 가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 호텔은 이달초 대우호텔 개관 전까지는 산문안 42개 호텔 중 최고급. 일본 군마현에서 자수성가한 재일교포 박정인씨(56)가 재일교포 2명과 함께 투자해 운영중이다. 이 호텔에는 김과장 외에도 남녀 1명씩 2명의 북한인직원이 근무중. 이들은 모두 박사장 초청으로 평양에서 이리로 왔다.

“하루는 미니바에 모인 한국인 5명을 둘러보니 제각각 국적이 달라 우리 민족의 현대사를 돌이켜 볼 수 있었습니다.”

박사장은 “재일, 재미교포와 조선족(중국) 남,북한주민으로 사는 곳은 달랐지만 한민족이기 때문에 서로 술잔을 나눌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면서 “남북화해무드가 무르익어가니 여한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 호텔의 로비에는 북한에서 국보급으로 취급된다는 백두산해돋이 그림과 도자기꽃병 등이 전시돼 있고 현대식 사우나시설이 갖춰져 있다.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