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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어떡하죠?]부부간 갈등이 자녀를 내몬다

입력 | 2000-06-22 19:27:00


《청소년 전문가들이 써온 '우리아이 어떡하죠?'는 지면개편에 따라 이번주로 연재를 끝마칩니다. 10대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분은 청소년보호위원회 신가정교육팀(02-735-6250)으로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녀석이 매일 밤늦게 들어옵니다. 밤거리를 방황하다가 새벽녘에야 대문앞에 와 앉아 있기도 합니다. 이 녀석을 가만두고 싶지 않습니다. 자녀의 잦은 가출과 늦은 귀가에 시달리는 부모의 하소연이다.

자녀의 말을 들어보니 초저녁에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안 들어가는 것이고, 늦은 밤이 되었을 때는 혼날까봐 못 들어가는 것이고, 새벽녘에는 갈 곳이 따로 없기 때문에 대문앞에 죽치고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자녀를 밖으로 내몰아 부모 마음을 지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놀랍게도 부모 자신에게 있었다. 이 가정은 IMF로 인해 남편이 실직한 후로는 아내가 일해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아내는 늘 몸과 마음이 고단하다. 이제는 달리 직업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남편이 밉살스럽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은 지저분하고, 아이들은 엄마에게 다짜고짜 밥 달라고 소리지른다.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아빠가 너희 밥을 차려주실거야 라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남편에게 직접 부탁하기가 왠지 껄끄럽다. 그러나 남편은 자녀를 향해 야, 이놈들아. 네 밥은 네가 챙겨먹어. 하면서 맞받아친다. 아내에게 대놓고 아무리 힘들어도 부엌일은 여자가 해야지. 나도 애들하고 하루종일 힘들었단 말이야 라고 말할 용기가 없다.

하루하루 갈등은 깊어만 가고, 악화된 부부관계는 남편이 자녀들에게 과도하게 꾸중을 하고 간섭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심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엄마의 마음에는 불같은 화가 일고 서로간의 갈등의 골이 더 깊어간다. 아내의 마음을 눈치 챈 남편은 아내가 있는 시간에는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다룬다.

그러나 아내가 없을 때는 밥 좀 천천히 먹어라. 밖에는 절대 나가지 말아라. 왜 이리 말썽을 부리느냐. T셔츠를 바지 속으로 넣어서 입어라 등의 여러 가지 간섭을 하게 된다.

자녀는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 특히 아빠만 계실 때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일단은 동네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엄마 오실 시간에 맞추어서 대문 앞에서 기다린다. 간혹 엄마 오실 시간을 놓치게 되면 거리를 방황하게 된다.

이런 사례에서 자녀의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자녀를 탓하기 전에 우선 부모 자신이 서로의 갈등을 진지하게 다루고 투명하게 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 병행되지 않고 자녀만을 탓하는 것은 아무 효과가 없다.

우리 각자도 무의식적인 부부갈등으로 인해 자녀들에게 좋은 않은 행동이나 심리상태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임은미(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