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서울 강남의 어느 한식당. 주말을 맞아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갖게 된 김영미씨(26·여)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복잡한 식당 안에서 수십명의 손님이 뿜어대는 담배연기를 고통스럽게 참아야 했다.
다른 식당과 마찬가지로 금연석과 흡연석이 구분돼 있지도 않았다. 동료들에게 ‘담배 좀 그만 피우라’는 말을 꺼낼 분위기도 아니었다. 김씨는 특히 동료들이 담배꽁초를 거침없이 소주병에 넣어 버리거나 심지어 반찬그릇에 비벼 끄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나라 흡연자들은 자신의 흡연으로 주위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아주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평소에는 점잖고 주위 사람을 잘 배려해 주던 동료들이 왜 담배 피울 때는 그렇게 이기적으로 변하는지 모르겠어요.”
김씨의 항변처럼 우리 사회에는 비흡연자를 배려하는 흡연문화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축구장 등 야외 경기장 관람석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적지 않아 자리를 잘못 잡은 비흡연자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불청객’ 담배연기를 맡아야 한다. 금연구역인 지하철역 안에서도 밤낮 없이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대학생들의 MT현장과 직장인들의 토론회, 심지어 야유회에서조차 비흡연자는 좁은 공간에 가득 찬 담배연기를 참아내야 한다. 비흡연자들은 한두모금만 연기를 마셔도 목이 몹시 칼칼해지지만 일일이 얘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담배냄새가 온통 옷에 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에 자주 가는 무역회사 직원 백인탄씨(31)는 “‘남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일본인 특유의 사고 때문에 일본에서는 비흡연자가 주위의 흡연자로 인해 고통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일본의 흡연문화를 부러워한다. 금연장소에서는 물론 흡연이 허락된 야외 경기장 등에서도 주위에 피해를 주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최진숙(崔珍淑)사무국장은 “비흡연자들의 혐연권 보장을 위한 제도 의 마련도 필요하지만 흡연자 스스로 비흡연자의 고통을 생각하는 성숙한 정신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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