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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존]"액션은 프로, 연기는 아마추어"

입력 | 2000-06-26 10:18:00


경공술을 쓰는 무사들이 지붕 위로 날아오르며 잰 발걸음을 친다. 신기의 검법을 습득한 주인공이 칼로 땅을 가르면 심후한 내공에서 뿜어 나오는 염력으로 천지가 진동하고 갈라지며 상대 무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게다가 거기에 맞물린 비운의 사랑 이야기는 또 어떤가.

원나라가 쇠퇴하고 반원세력이 창궐하던 그때, 낯선 이국 땅에서 고려인의 피를 타고 태어난 남자 주인공은 몽고인 장수와 그의 고려인 첩 사이에 태어난 여주인공과 기구한 삶의 흐름에 휘말려, 사랑하는 사이면서도 끝내 원수로 맞서야 하는 운명의 기로에 선다. 이렇게 규모가 큰 화려한 스펙타클 이야기라면 누구라도 탐낼만한 소재일 것이다. 그 영화가 였다.

김혜린의 원작 만화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영화 가 만화의 판타지와 대적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곧잘 CG로 배경을 깔아 만화적인 황홀경을 전해 주려 애쓴다.

그러나 김혜린의 서정적인 그림체에 새겨진 인물들이 종이 위를 달리면서 독자에게 그려준 상상력에 비하면 스크린에 구체적으로 그려진 영화의 판타지는, 만화가의 펜이 지닌 일필휘지의 마력에 중과부적의 열세를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남자 주인공으로 나온 신현준이 성실하게 연기한 흔적을 빼면 의 주, 조연 배우들은 대부분 배우라기 하기엔 민망한 연기를 펼친다.

억지로 멋을 부리며 간신히 대사를 읊는 수준인데 특히 여주인공역의 김희선은, 그녀가 아무리 한국의 대표적인 스타라고 해도, 그래서 영화의 성패와 상관없이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숙명과 비극이라는 수식이 붙는 비운의 여주인공 역에는 도무지 힘이 달리는 것이 한 눈에 드러난다. 연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예쁘게 보일까 고민하는, 드라마와 CF 스타의 관성이 그대로 드러난 그녀의 모습은 마치 현대의 CF 화면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의 스크린에 떨어진 것 같다.

배우는 예쁘게 보이기 위해 스크린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화면 속 등장인물을 관객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녀에게는 영화의 주인공에 어울릴만한 서늘하게 내려앉는 존재감이 없다. 지금 표면적으로 한국영화가 아무리 역동적인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해도, 연기력을 갖추지 못한 스타가, 게다가 별로 전력을 다한 것 같지 않은 스타가 기계적으로 대사를 암송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해서는 결코 한국 영화의 전성기라는 신천지는 열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 글에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쓰는 것이 이 영화에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원작만화를 읽은 관객이라면 이야기의 규모가 만화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며 대개는 원작의 이야기를 요령껏 축약하지 못했다고 느낄 것이다. 원나라의 쇠퇴와 반원세력의 창궐과 그 사이에 낀 원나라 거주 고려인의 역사를 배경으로 깔고 여러 가문의 흥망성쇠를 담아 내며 거기에 몽고인, 한족, 고려인의 구체적인 소문자 역사를 펼쳐낸 원작의 이야기 규모를 감당하기에, 시사회에서 상영된 2시간 10분 분량의 줄거리는 모자라는 분량이다.

또, 오로지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역사적 배경을 비극적 사랑의 장애로 설정한 순정 만화의 감상적인 비장미를 감상하기에도 너무 긴 분량이다.

배우들의 연기 탓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로 데뷔한 김영준 감독에게는 화면의 크기에 대한 연출 감각이 없는 것이다. 숨을 죽이게 하는 현란한 액션 장면이 끝나면 남녀 주인공의 사랑 사연을 축으로 한 드라마가 펼쳐지지만 관객이 전해 받는 인상은, 늘 비슷한 정자나 가옥에 남녀 주인공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장면을 롱 쇼트나 풀 쇼트의 관습적인 설정 화면으로 잡고,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비슷한 크기의 나눠 찍기 화면으로 간신히 이야기를 끌고 가는 느낌을 받는다.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내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숙명, 비장미, 처연함, 도저한 역사의 허무주의, 거기에 묻어든 사랑의 비극을 풀어낼 만큼 인물의 감정선을 살려내는 세심한 연출 개념이 보이지 않는다.

처럼 현재가 아닌 과거로 파고 들어간 대하 서사물이라면 의당 그 시대에 가능한 상상력과 서사의 깊이, 쩨쩨하게 일상에 파묻혀 정해진 일과대로 사는 현대의 사람들이 잊어버린 신화적 규모를 지닌 매혹을 기대하게 된다.

하늘을 날고 검과 표창을 휘두르던 칼의 시대에 부드러운 삶의 정서를 녹이지 못했던 과거 사람들의 비극,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운명과 역사의 흐름에 떠밀려 들어가 아주 구체적인 행복의 징표도 찾아내지 못했던 사람들의 슬픔, 도무지 대적하기 힘든 삶의 비극적 규모와 맞서는 그들의 영웅적인 외적인 투쟁과 내적인 갈등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진공관 같은 현실을 소비 충동과 즉물적인 욕구로 메꾸는 사람들의 정신적 자극제일 테지만 의 등장인물들이 그만한 그릇이 되기엔 너무 초라하다.

이야기와 등장인물의 묘사에 허점을 드러낸 이 영화가 볼거리를 주는 것은 특수효과가 가미된 무술 액션 장면이다. 이 영화의 액션 장면은 김영빈의 나 임권택의 처럼 한국영화의 새로운 액션 리듬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종래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쾌감을 준다.

7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큰 흐름을 이뤘던 홍콩 무협영화의 줄기를 업그레이드한 것 같은, 의 현란한 무사들의 결투 장면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향수를 부추길 뿐만 아니라 파열된 드라마를 보완해주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스펙타클이다.

배신과 오해와 의리와 애정이 서로 맞물리는 가운데 는 혼탁한 강호에 남겨진 비극적인 사랑의 사연을 축으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블록버스터의 솔직한 장점은 살리지 못했다. 차라리 이야기를 줄이고 액션의 쾌감과 거기에 달콤한 순정만화적 감성을 겸손하게 깔아놓았으면 어땠을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스타 여배우의 비중이 너무 컸을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풀리지 않는 의문처럼 는 비전문적인 연기력을 갖춘 배우에 너무 많이 의존함으로써 이야기를 무너뜨린 채, 또 그것으로 대중에게 어필해야 하는 모순된 입장에 서고 있다. 두 편의 영화가 공존하는 것 같은 는 한국영화가 서사적 규모의 만화와 경쟁할 만큼 자신감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썼으나 자본과 기술력에 비해 아직 인적 인프라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아무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형편없는 이야기 수준으로 곤두박질 친다 해도 이 한국형 블록버스터 처럼 아마추어 연기를 장식으로 포장하지는 않는다. TV와 CF가 배출한 스타에 의존해 영화를 기획하는 한, 스크린의 크기에 걸 맞는 그릇을 지닌 스타층을 쌓지 않고서는 한국영화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서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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