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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천무, 원작만화보다 비장미 떨어져

입력 | 2000-06-26 19:34:00


영화 ‘비천무’는 김혜린이 1987년 연재를 시작해 1991년에 완성한 만화 ‘비천무’에서 캐릭터와 뼈대만 취해왔을 뿐, 정서와 스케일은 원작 만화와 아주 많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서사적 배경의 탈색. 만화 ‘비천무’는 중국 원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원치 않은 비극으로 몰고간 역사의 격랑을 묘사하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순정과 무협 뿐 아니라 중원을 제패하려는 군왕들의 욕망, 고통받는 민중, 원나라로 끌려간 고려인들의 망향 등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대하 서사극이라 할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했다.

반면 영화에는 그같은 서사적 묘사가 없다. 방대한 원작을 영화로 옮길 때 어쩔 수 없었을 축약과 단순화를 감안한다 해도 지나치게 멜로에 포커스를 맞추는 바람에 영화에서 서사적 스케일은 실종됐다.

멜로에 주목한다면 승부처는 캐릭터다. 그러나 영화 ‘비천무’는 원작이 갖고 있던 캐릭터의 풍부함을 살려내지 못했다. 원작과 영화에서 성격 차이가 가장 큰 캐릭터는 여주인공 설리(김희선). 원작에서 설리는 당차기 이를 데 없는 여성으로 전투를 직접 이끌기도 하고, 평생의 사랑인 진하를 찾아 전장을 헤매고, 그에게로 가기 위해 남편의 장례조차 다 치르지 않고 뛰쳐 나가는 비련의 여인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김희선은 커다란 눈에 눈물만 그렁그렁할 뿐, 20대 초반 화장품 CF모델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장성한 아들을 둔 어머니이면서도 마음 속 격정을 이기지 못하는 설리의 사연 많은 삶을 연기하기에 김희선의 표정은 너무 젊고 단순하다.

영화 ‘비천무’는 만화 원작이 진하게 품고 있던 ‘비장미’, 안타까운 그리움과 절제, 애절한 사랑을 수십년간 가슴속에 묻어둬야 했던 한, 소박한 꿈조차 파괴해버리는 역사의 피바람, 모든 것이 끝난 뒤의 허무함, 사려깊은 대사의 맛을 스크린에 옮겨놓는데 실패했다.

홍콩식 와이어 액션기법으로 허공을 나는 액션의 묘사는 만화보다 멋있지만, 깊이와 인간에 대한 이해는 만화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가벼운 멜로영화다. 평점으로 비교한다면? 만화 ★★★★, 영화 ★★☆(만점〓★ 5개)가 적당하겠다.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