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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혁명]美 ‘유전정보 패권주의’ 시작되나

입력 | 2000-06-26 19:34:00


▼'정보격차' 확대 우려 고조▼

30억쌍의 유전정보와 46개의 염색체로 이뤄진 인간 게놈이란 ‘신대륙’도 미국이 휩쓸 것인가.

인간 게놈 해독 작업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뤄짐에 따라 앞으로 선진국, 특히 미국과 제3세계간에 유전공학과 경제적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첨단 생명공학 업체는 게놈 정보를 이용해 국제특허를 얻어낸 다음 제3세계 국가에서 엄청난 로열티를 빼내갈 것이란 어두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허권 선점 경쟁〓영국 BBC 방송은 최근 ‘누가 게놈을 소유할 것인가’라는 제하의 특집기사에서 미국의 첨단 생명공학기업과 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인간 유전자의 사유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이는 “신대륙에 금을 긋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양상”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특허권을 바탕으로 게놈 해독에 들인 수십억달러의 비용을 회수하려 하고 있다. 미 국립생물기술정보센터(NCBI)는 “인류공동의 유산인 염기 서열에 대한 정보는 공유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그러나 이같은 염기 서열을 분석, 응용해 신약이나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대해서는 특허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미 생명공학기업인 인사이트 게노믹스는 게놈 관련 특허 신청에 가장 앞장서 513개의 특허를 따냈으며 출원중인 것만 5만여건이라고 BBC는 전했다. 휴먼 게놈 사이언시즈는 112개의 특허권을 얻었으며 출원건수는 7500건, 셀레라 게노믹스는 6500건을 출원한 상태다. 대학과 공공기관도 경쟁대열에 뛰어들어 캘리포니아대는 219개, 미 보건부는 183개의 특허권을 따냈다.

인사이트 게노믹스는 제약회사에 유전정보 사용료로 엄청난 돈을 받기로 하고 그간 나름대로 축적한 게놈 분석 결과를 넘기고 있다. 영국의 글락소웰컴과 독일의 파이저 등 11개 제약회사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간 유전 정보를 이용한 맞춤형 신약개발 등을 서두르고 있다. 민간연구뿐만 아니라 국제 공공연구인 인간 게놈 프로젝트도 미국 주도로 이뤄졌다. 18개국 350여개 연구기관이 연구에 참여했지만 지금까지 100만개 이상의 염기를 분석한 연구기관은 17개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의 도쿄 인체게놈센터, 영국의 생거연구소, 독일의 막스프랑크연구소 등 5개 연구기관을 빼면 12개가 모두 미국의 연구기관이다. 또 전체 염기서열의 85%는 미 국립인간게놈연구소 등 5개 기관에 의해 완성됐다.

▽신제국주의의 가능성〓게놈 정보에 대한 특허권 부여에는 문제가 있다. 우선 NCBI의 입장과 달리 약품개발 가능성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유전 정보 자체에 대해 이미 특허 등록된 것이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인사이트 게노믹스는 1998년 게놈의 염 기 서열 일부를 대상으로 미국 정부에 특허권을 신청해 승인을 받았다.

영국 제네와치 UK 연구소의 수 메이어 박사는 “이같은 인간 유전정보 특허권 경쟁이 갖는 문제점은 근본적으로 이들 특허가 발명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창조된 것을 먼저 발견한 권리를 독점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민간기업이 특허를 독점할 경우 후발국은 엄청난 로열티를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전 정보 독점의 폐해는 제3세계인의 고유한 유전 정보를 파악한 선진국이 제3세계인을 상대로 로열티를 물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파나마 구아미 인디언의 유전 정보에 대한 권리는 미국 상무부가 소유하고 있다.

인도의 생태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지금까지 식민지는 제3세계의 영토 등에 설정됐지만 이제는 인간과 각종 생물의 유전 정보에도 식민지가 만들어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진국의 유전 정보 독점 행위를 ‘생물 해적행위(Biopiracy)’라는 새로운 표현으로 비난했다.

kkt@donga.com

▼백인위주 新藥…인종갈등 터질수도▼

인간 유전자의 암호가 담긴 게놈에 대한 해독 작업이 일단락됨에 따라 제약회사들은 앞으로 환자의 개인적 체질에 맞춘 신약을 개발할 수 있게 됐으나 자칫 인종간 격차가 심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는 24일 게놈에 관한 특집 기사에서 “유전자를 응용한 ‘맞춤형 신약’은 앞으로 인종간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제약회사들이 유전자 신약의 상품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구매력이 크면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부작용 없이 투약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 개발에 치중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생명공학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선 미국의 주류인 백인 위주로 유전자 신약개발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백인에게는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지만 다른 인종에게는 별 약효가 없는 각종 신약이 개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미국인에게 흔한 질병이 신약 개발에서 우선 순위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게놈을 응용한 암 치료제의 경우 미국에선 자국인이 흔히 걸리는 전립선암 등을 우선 연구하고 있는 반면 한국인에겐 흔하지만 미국에선 발병률이 낮은 위암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인간의 피부와 눈빛 머리카락 등 인종적 특징을 가름하는 유전자가 규명될 경우 ‘금발 에 푸른 눈을 지닌 키 큰 백인’처럼 맞춤형 아기를 낳는 일도 가능해진다. 경비가 문제가 될 뿐 이론적으로는 특정 인종이나 민족의 유전적 특성을 더욱 살리거나 문제점을 개량한‘우성(優性) 인간’을 만들어내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선 생명공학과 경제력 등에서 모두 뒤지는 소수 인종은 ‘포스트 게놈 시대’에서 인종에 따른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미국 정부는 몇년 전부터 신약의 임상실험 과정에 다양한 인종이 포함되도록 지도해오고 있기는 하다.

어쨌든 게놈 시대의 개막은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편 새로운 사회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인류에게 요구하고 있다.

eligius@donga.com

▼프로젝트 총지휘 美콜린스▼

인간 게놈 지도를 만들기 위해 18개국 정부가 추진해온 인간게놈프로젝트(HGP)를 총지휘하고 있는 프란시스 콜린스(50)는 미국이 자랑하는 유전자 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원래 화학을 전공한 그는 생애 대부분을 공공부문 연구과제에 바쳐 낭포성 섬유종과 신경섬유종, 헌팅턴병 등 많은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를 규명하는 데 기여했다고 AFP통신이 25일 전했다. 현재 미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 소장이기도 하다.

콜린스는 1950년 4월 버지니아주 슈타우턴의 한 농장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예일대에서 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콜린스는 예일대에서 생화학자로서 첫 연구를 시작한 뒤 생명의 열쇠인 DNA를 접한 후 “(DNA에) 완전히 압도당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DNA연구가 인류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확신, 유전학 공부를 위해 1984년 미시건대에 진학했다. 10년의 공부 끝에 그는 1993년 국립보건원에 합류했고 줄곧 게놈 연구를 이끌고 있다.

미 의학협회와 학술원(NAS) 회원이면서 독실한 종교인인 콜린스는 유전학의 윤리적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특히 유전공학을 통해 유전형질을 개선하려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콜린스는 게놈 해독이 끝났지만 일이 완전히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여긴다. 그는 인간의 수많은 질병과 연관된 특정 유전자들을 찾는 작업을 ‘덤불 속에서 바늘 찾기’로 비유하곤 한다.두 자녀의 아버지로 1주일에 100시간씩 일에 빠져 지내지만 기타 연주를 즐기며 때로는 가죽옷에 청바지를 입은 채 오토바이를 타는 멋쟁이다.

taylor55@donga.com

▼셀레라 제노믹스 벤터회장▼

셀레라 제노믹스사의 회장 겸 수석연구원을 맡고 있는 크레이그 벤터 박사(53)는 유전학계의 상식과 전통을 무시하는 ‘독불장군’으로 통한다.

벤터는 80년대초 미 국립보건국(NIH)에서 유전자 염기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유전자연구에 매료돼 게놈연구에 여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90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8개국이 30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에 착수할 때 주요 연구진으로 참여하면서 DNA 화학물질인 염기의 서열구조를 해독하는 작업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는 92년 독특한 분석방법을 제안했으나 거부당하자 HGP와 결별을 선언했다. 이어 자신의 능력과 연구 가능성을 인정한 독지가 월리스 스타인버그의 도움으로 게놈연구소(TIGR)를 설립해 독자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벤터는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분자생물학자 해밀턴 스미스와 함께 게놈연구에 박차를 가해 95년 바이러스성 돼지 인플루엔자균의 게놈을 해석하는 등 인간게놈프로젝트 완성에 한발 다가섰다. 자신감을 얻은 벤터는 98년 해밀턴 스미스와 함께 그동안 TIGR와 HGP에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생명공학 벤처기업인 셀레라 제노믹스사를 설립했다.

지난해 벤터는 HGP의 연구실적을 추월해 올해까지 독자적으로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완료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데 이어 3월 초파리 유전자 지도를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라틴어로 ‘신속’이라는 뜻을 지난 셀레라는 24시간 가동하면 한 달에 10억 개 이상의 염기를 분석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컴퓨터 설비를 갖추는 등 미국을 물론 세계를 대표하는 생명공학계의 대표적인 벤처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stern10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