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사들이 휘발유 경유 등유 벙커C유 등 석유 완제품의 국내 판매원가(공장도가)를 국제시세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SK, LG정유, 현대정유, S-Oil(구 쌍용정유) 등 정유 4사는 지난해 국제석유시장에서 석유완제품을 직접 수입했을 경우에 비해 13.7%나 높게 원가를 매겨 팔아 계산상으로 2조원 이상의 ‘폭리’를 취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가구당 연간 평균 15만여원씩 불필요한 부담을 지운 셈으로 정유사들이 ‘영업비밀’이라며 감추고 있는 원가 산출 근거를 투명하게 감시하는 동시에 이를 국제시세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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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실은 본보 취재팀이 석유업계 관계자와 회계사 등의 도움을 받아 지난 한 해 동안 싱가포르 석유시장의 석유 완제품을 도입했을 경우의 원가를 산정한 뒤 이를 국내 정유 4사가 원유를 들여와 만든 석유제품의 원가와 비교 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정유사들이 이처럼 국제시세보다 높은 원가를 유지해 온 것은 ‘가격 담합’과 국제 석유제품의 국내시장 진입을 차단하는 ‘영업활동 담합’ 등 독과점 구조의 직접적인 폐해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분석에 따르면 무연휘발유의 경우 국제시장의 완제품 가격에 뱃삯 보험료 관세 유통비 등 각종 부대비용을 포함한 수입가격이 ℓ당 207.07원으로 계산된 데 비해 정유4사가 원유를 수입해 국내시장에 내놓은 제품의 평균 원가는 ℓ당 247.70원으로 40.63원이나 비쌌다.
지난 한 해 동안 정유4사가 국내에서 판매한 무연휘발유가 모두 101억5860만여ℓ인 점을 감안하면 4127억여원의 차액이 발생한 셈이다.
이 같은 식으로 경유 보일러등유 실내등유 벙커C유 등을 모두 계산하면 정유4사는 지난 한 해 동안 2조119억여원의 차익을 낸 것으로 분석된다.
석유제품은 원가에 교통세 주행세 교육세 등 각종 세금과 주유소의 판매이윤이 붙어 소비자들에게 최종 판매된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의 윤종훈(尹鍾薰)자문회계사는 “완제품을 100원에 수입할 수 있는데도 정유사들이 113.7원에 같은 제품을 만들어 주유소에 넘겼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정유사들이 원가를 터무니없이 부풀려 폭리를 취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유사 관계자들은 “본래 덤핑물량이 많은 싱가포르 석유시장의 가격을 기준으로 얘기하는 것은 곤란하며 국내 정유사들은 높은 부채율에 따른 이자 등 영업외비용이 많아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정유4사의 재무제표상 영업외비용에서 영업외이익을 뺀 순수 금융비용은 6228억여원에 불과했다.
국내 석유관련 전문가들도 정유업계의 주장에 대해 “싱가포르 시장은 다른 국제 석유시장에 비해 비싼 곳인데다 이곳의 가격은 지난 수십년간 아무 문제없이 형성된 국제 공인가격”이라며 “정유사들도 국내 정제유를 이 국제가 기준으로 국내 대규모 거래처에 공급해 왔고 해외 수출도 마찬가지였다”고 반박했다.
서울대 경영학과의 한 교수는 “국내 석유시장이 진입장벽이 높은 과점상황이어서 얼마든지 가격담합이 가능하며 그 결과 덤핑도 자유자재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며 “정유사들의 원가 산출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